미국 은행들 수익악화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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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에도 불구하고 미 은행들의 영업 환경은 급격히 악화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순이익은 3년만에 최저로 떨어졌으며, 부실채권은 2년 전에 비해 약 2배로 늘어났다.

이 상황에서 경기가 하강한다면 미국 은행들은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럴 경우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 은행들로부터 추가로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기존 대출금도 빨리 갚으라는 압박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미 은행 수익 급감〓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8천4백77개 상업은행들의 2분기(4~6월)순이익은 1백47억달러로 1997년 3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1분기의 1백95억달러에 비해 48억달러(25%)나 줄어든 것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백69억달러와 비교해도 22억달러(13%)나 감소했다.

순이익을 전체 자산으로 나눈 자산이익률(ROA)은 0.99%로 약 7년반 만에 처음으로 1% 밑으로 떨어졌다.

부실채권도 급증하고 있다. 미 통화감독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69개 대형은행의 부실채권이 지난 3월말 1천억달러로 집계돼 2년 전에 비해 5백50억달러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체 대출금 가운데 부실 대출금의 비율도 2.5%에서 5.1%로 높아졌다.

◇ 왜 그런가〓은행들의 방만한 대출 심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1990년대 초반 이후 경기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신용이 좋은 고객들은 돈을 빌릴 필요가 없거나 이미 빌릴 만큼 빌린 상태가 됐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떼일 염려가 높은 고객들에 대한 대출 비중을 앞다퉈 높였다.

대기업 대출은 최근 4년간 5백50억달러가 늘어난 반면 신용이 낮은 중소기업 대출은 2천6백7억달러나 증가했다. 개인대출도 95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중 상당 부분이 부실화하면서 은행들의 대손충당금이 급증했다. FDIC에 따르면 2분기에 은행들이 쌓은 대손충당금은 6백19억달러로 1분기에 비해 22억달러가 증가했다.

은행들이 무리를 하게 된 데에는 매분기 수익이 증가하기를 바라는 투자자들의 압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주가가 계속 오르기를 바라는 주주들에게 수익이 계속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위험을 감수했다는 얘기다.

통화감독원의 데이빗 기본스 신용위험국장은 "은행들이 닷컴기업처럼 운영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 라며 "수익 급증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안정성이 중요한 은행업에 큰 위협이 되고있다" 고 말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그동안 꾸준히 금리를 올린 것도 은행들에게 타격을 줬다.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의 가격이 금리 인상에 따라 상당한 평가손을 입은 것이다. 은행들은 증시의 침체에 따라 투자한 주식에서도 큰 손실을 봤다.

◇ 당국의 대책〓사태가 심각해지자 FRB와 FDIC, 통화감독원 등 금융감독기구들은 공동으로 은행들에게 회계 기준을 강화하도록 요구했다.

통화감독원은 동일인에 대해서는 자본금의 일정 한도 내에서만 대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감독 규정을 강화해 각 은행에 통보했다.

일단 대출 기준을 높여 추가 부실 가능성을 줄이고, 기존 대출금에 대해서는 감시.감독을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통화감독원 관계자는 "은행들은 그동안 벌어놓은 현금이 있어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는 상황" 이라며 "지금부터라도 대출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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