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쯤 이산가족 만나게 하자 … 정부가 먼저 북한에 대화 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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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근 총재

정부가 오는 20일 개성이나 문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하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14일 기자회견을 하고 “오늘 오전 대한적십자사 명의로 판문점 적십자채널을 통해 북측 조선적십자회에 이런 내용을 전달했다”며 “북측 적십자회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3월 즈음 상봉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과 미국이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미 고위급대화(3차 대화)를 하기로 발표한 날 동시에 대북 제의를 전격 발표한 셈이다. 이는 ‘더 많은 식량을 원하면 남북대화에 나서서 남한으로부터 식량을 지원받으라’란 미국의 일관된 대북 메시지를 토대로 한 것이기도 하다. 이 메시지는 지난 1일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방한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우리가 인도적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을 매개로 김정일 사후 북측에 사실상 처음으로 대화를 먼저 제의했다는 의미도 있다.

 또 이달 말 예정된 한·미의 ‘키 리졸브’ 연습, 핵안보 정상회의, 4·11 총선, 김일성 100회 생일(4월 15일) 등을 앞두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겠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정부에서는 통미봉남(북한이 남한을 빼놓고 미국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전략)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 여론에 위기감이 있었을 것”이라며 “향후 북한이 거부할 경우 명분을 얻기 위한 선점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북측이 제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정부 당국자는 “통상 답변이 오기까지는 하루 이틀 걸린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북측이 바로 답을 주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고 교수는 “실무접촉까지는 성사시켜 우리 측의 보따리를 알아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북·미 대화에 진전이 있을 경우 남북대화 재개에 큰 기대를 안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북측은 국방위 차원에서 지난 3일 공개질문장을 던지는 등 대남 비난의 강도를 연일 높이고 있다. 7일 고구려 고분군 일대 산림 병충해 방제 지원을 위한 우리 정부의 실무접촉 제의에도 묵묵부답이다. 다만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매개로 북측에 쌀이나 비료 등을 지원해왔음을 감안할 때 우리 측이 ‘통 큰’ 지원을 한다면 북측이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고려대 유호열(북한학과) 교수는 “북에서도 대남 비난을 계속하는 국방위와 내각 간 이견이 있을 수 있어, 북·미 대화가 열리는 23일 즈음에 의사표명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산가족 상봉은 2009년 9월과 2010년 10~11월 단 두 차례 이뤄졌다. 이산가족은 현재 60만~7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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