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習近平 습근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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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이름에선 종종 세월을 읽을 수 있다. 대표적 인물로 마오쩌둥(毛澤東)의 후계자 화궈펑(華國鋒)이 있다. 한때 중국의 1인자였던 그의 본명은 쑤주(蘇鑄)다. 성은 물론 이름도 바꾼 경우다. 계기는 1938년, 그가 항일운동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면서다. ‘중화항일구국선봉대(中華抗日救國先鋒隊)’에서 ‘화국봉’ 석 자를 취했다.

화궈펑을 물리치고 대권을 장악한 덩샤오핑(鄧小平) 역시 고친 이름이다. 아버지가 처음 지어준 이름은 덩셴성(鄧先聖). 성인에 앞서라는 거창한 뜻이 담겼다. 이에 마을 서당의 훈장이 훈수를 뒀다. 과한 것 아니냐고. 훈장은 대신 현자(賢)가 되기를 바란다(希)는 뜻의 시셴(希賢)이란 이름을 덩에게 주었다. 그러나 공산혁명을 하기엔 이 이름마저 과했다. 덩은 작고(小) 평범하다(平)는 뜻의 샤오핑(小平)으로 이름을 바꿨다.

올가을 열리는 중국공산당 제18차 대회에서 최고지도부인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으로 선출될 게 확실시되는 인물 리위안차오(李源潮) 당 조직부장도 우리의 눈길을 끄는 이름을 가졌다. 중국은 50년 한국전쟁 때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조선(북한)을 돕는다는 위안차오(援朝)에서 같은 발음의 글자 위안차오(源潮)를 취해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의 해인 50년 11월에 태어났다.

14일 미국 방문에 나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형제자매 이름은 태어난 곳과 인연을 맺고 있다. 53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시진핑은 베이징의 옛 이름인(北平)에서 핑(平)을 따 왔다. 동생은 가까울 근(近)과 대칭되는 원(遠) 자를 써서 시위안핑(習遠平)이다. 누이 치차오차오(齊橋橋)는 옌안의 차오얼거우(橋兒溝) 중앙의원에서 태어나, 치안안(齊安安)은 시안(西安)에서 각각 태어나 갖게 된 이름이다. 주목할 건 누이들 성이 시(習)가 아니라 치(齊)라는 점이다. 어머니(齊心)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딸들을 학교에 보낼 때 보기 드문 시(習)란 성을 쓸 경우 고위 관리의 자제란 점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자식의 성까지 바꾸며 청렴하려 애썼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훗날 시진핑의 출세가도를 도왔다. 큰 나무는 저절로 자라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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