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사람 없어 … 공무원, 뒷돈 받고 묵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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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하자 발생 시점이 언제입니까?”(성남시 의회 정종삼 의원)

 “파악된 것이 없습니다.”(성남시 중원구청 담당 공무원)

 지난해 12월 1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 행정감사장에서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2007~2009년 성남 종합시장에서 단대오거리 사이 인도에 설치된 탄성포장 길이 누더기 상태로 방치된 데 따른 책임 추궁이었다. 공사비 12억원이 들어간 이곳은 불과 2년여 만에 심각한 하자가 발생했다.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민원이 계속됐지만 하자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시 의회가 나선 것이다.

이영희 의원도 “담당 공무원이 현장을 가지 않고 탁상행정을 일삼았기 때문에 부실이 난 것 아니냐”며 “시방서대로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탓에 이런 일이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구청 측은 “공사 부실에 대한 민원이 많아 공공근로를 투입해 하자보수 공사를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하자보수 기간이 제품 부실에 대해선 1년, 공사부실에 대해선 2년이기 때문에 이 기간이 지나면 지자체가 자체 예산을 들여 보수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 성남시는 부실 원인과 담당 공무원이 현장감독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 중에는 탄성포장 길이 부실 공사로 애물단지가 된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하자보수 대책을 마련하거나 담당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사례는 거의 없다. 부실 시공의 원인 파악부터 해야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결국 관리·감독의 책임이 공무원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장에 나와 공사 과정을 꼼꼼히 따져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공무원은 별로 없다”며 “일부 공무원은 문제가 있어도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묵인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업체가 공사 감독자인 공무원의 눈을 속이기도 하지만, 업체와 공무원 사이에 유착도 빈번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토목·조경 등 담당 공무원 집안에 경조사가 있다고 하면 업체 사장들이 돈봉투를 들고 줄을 설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쓴다”며 “평소에 관계를 잘 맺어 놓아야 공사 수주가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처장은 “정책 실명제와 이력제를 시행해 담당 공무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편법·부실 공사로 인한 부당 이익금을 환수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탐사팀=최준호·고성표·박민제·이가혁·하선영 기자, 김보경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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