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추적 "줄이겠다"는 말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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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추적은 현 정부 들어 국정감사 때마다 논란이 벌어지는 사안이다.

야당의원들은 "새 정부 들어 무분별한 계좌추적의 남발로 인권침해가 심각하다" 고 주장하고 여당의원들은 "국제통화기금(IMF)사태 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기업 정리 등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 라고 반박하고 있다.

논란은 경제계로까지 확산돼 불가피론과 기업활동 위축론이 팽팽히 맞서기도 했다. 때문에 대법원은 지난 4월 불필요한 계좌추적을 막기 위해 법원의 영장심사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29일 공개된 계좌추적(금융거래정보 요구)실태자료는 국가기관 등에 의한 계좌추적이, 영장이 없는 경우를 포함해 오히려 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영장 없는 계좌추적 너무 많다〓금감위 제출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총 계좌추적 건수 19만3천1백6건 중 법원의 영장에 의한 것은 1만9천9백19건에 불과했다. 비율로는 전체의 10.5%.

반면 세무관서나 선관위.공직자윤리위.금융감독원 등에 의해 영장 없이 이뤄지는 계좌추적은 1998년 전체의 88.2%에서 99년 89.7%, 올해 들어선 6월말 현재 91.1% 등 계속 증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영장 없는 계좌추적은 세무관서가 가장 많았고 공직자윤리위.금융감독원.선관위 등의 순이었다.

특히 선관위의 경우 4.13총선 실사를 위해 올 들어 6월까지만 5백53건을 추적, 지난 3년간 총 요구건수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물론 영장 없는 계좌추적이 모두 불법은 아니다. 선관위는 선거법, 공직자윤리위는 공직자윤리법에 의해 추적이 가능하다.

국세청 등 다른 기관은 금융실명제법에 근거가 있다.

◇ 부작용 논란〓정치권뿐만 아니라 경제계에서도 영장 없이 이뤄지는 계좌추적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계좌추적권의 남용은 무엇보다 금융거래를 위축시켜 경제활동과 기업경영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고 지적했다.

특히 은행 관계자들은 "대상자의 거래내역을 명시한 영장을 제시한 뒤 예금자의 인적사항이나 전표 등 영장에 없는 내용까지 구두로 요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 해 남용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훈평(李訓平)의원은 "금융거래 비밀 누설 방지책도 병행해 이뤄져야 한다" 고 해 계좌추적의 폐해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을 주문했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공개된 자료 외에 연결계좌 조사 등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것까지 포함할 경우 계좌추적 건수는 훨씬 많다고 봐야 한다" 며 "계좌추적은 기본적으로 법원의 영장에 의해 최소한도로 이뤄져야 한다" 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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