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박원순 시장의 입, 신중할 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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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희
사회부문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책 발표장에는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준비된다. 여기에는 눈길을 확 잡아 끄는 박 시장 개인 사진도 첨부된다. 지난해 11월 예산안을 발표할 때는 대머리가 된 사진이 담겼다. “3년 후 머리가 벗겨질까 걱정”이라는 뜻이다. 지난달 서울시 인사제도를 설명할 때는 “공무원들이 신명 나게 하겠다”며 장발의 로커 머리를 한 모습으로 사진을 바꿨다. 교통요금 인상을 발표할 때는 각계의 요구에 고뇌하는 모습을 담았다. 뉴타운 발표장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 첨부됐다. 서울시정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고뇌와 고충을 얘기하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그가 과연 이런 사진처럼 현안마다 치열하고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용산 참사와 관련해 복역 중인 8명에 대한 사면 건의가 그렇다. 지난달 18일 저녁 그는 용산 참사 3주기 기념 북콘서트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정부에 건의해서라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실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즉석에서 밝혔다. 이날 구두약속은 결국 7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하는 공식 서한으로 연결됐다. 북콘서트에서의 발언 후 20일간 그는 이 문제를 얼마나 고민했을까. 법적 안정성을 위해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 논의까지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서울시장의 이런 언행이 과연 적절할까.

 박 시장의 즉흥적인 의견 개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충분한 검토 없이 한강 수중보를 제거한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동 폐쇄 방침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9일 트위터 글이 발단이 됐다. “경호시설을 폐쇄할 수 없느냐”는 네티즌의 글에 그는 “해당 부서에 이미 확인해보라고 했다”는 답글을 남겼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이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의 이런 모습에 인터넷과 트위터에서는 찬사가 쏟아진다. 이에 고무된 듯 그는 수시로 글을 남긴다. 취임 이후 그는 서울시 인터넷 생방송에 20번 가까이 출연했다. 거의 5일에 한 번꼴로 생방송에 출연한, 전문 방송인 수준의 일정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식으로 수렴한 의견이 서울 시민의 의견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5일 서울시가 자료 하나를 돌렸다. 박 시장 취임 후 시행된 주요 정책 100개 중 온라인상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점심시간 소규모 음식점 앞에서의 주차 단속 완화’라는 내용이다. 주차 단속 엄격히 하는 걸 누가 좋아하나. 하지만 그런 네티즌 칭찬에 반색만 하는 게 서울시장의 역할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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