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뉴욕의 상징이었던 패트릭 유잉

중앙일보

입력

뉴욕 닉스의 코치 데이브 드브쉐어는 팀이 1985년 NBA드래프트에서 첫번째 지명권을 가지게 되었을때 주저없이 조지타운대의 센터 패트릭 유잉을 선택했고 그가 대학 시절 명성에 걸맞게 뉴욕 팬들에게 1970년과 73년의 영광을 재현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유잉은15년동안 닉스에서 1000게임이상 뛰며 수많은 활약을 남겼지만 NBA챔피언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명예의 전당에서 곧 유잉에게 손짓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지만 NBA에서 몇 안되는 톱센터인 그는 이제 38살이고 부상에 시달리고 있 다.

결국 유잉은 4팀간 12선수의 복잡한 트레이드속에 끼어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떠났다.

유잉이 뉴욕을 떠난다는 소문은 지난 8월중순부터 떠돌기 시작했다.

이 트레이드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의 구단주가 조 듀마스를 LA에 내주고 시애틀의 빈베이커와 LA의 글 렌 라이스를 뉴욕에 트레이드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유잉은 80년대 중반 뉴욕에서 NBA 무대에 뛰어오른 이래 팀을 94년과 99년 두차례 NBA 챔피언쉽 결승에 올려놓았고 그의 활약으로 뉴욕을 15시즌동안 가장 단결력이 강한 팀이 됐다.

하지만 많은 뉴욕팬들은 챔피언십 우승이 없는 것은 곧 실 패라는 공평치못한 평을 내렸다.

패트릭 유잉은 뉴욕에 있는 동안 득점과 리바운드등 총 공격과 수비 14부문중 11개 부문에서 선두를 달려 뉴욕에 있었던 그 어떤 선수보다 뛰어났지만 결국 챔피언십은 그의 손에 미치지 못했고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뉴욕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Joins 김태균 기자 <taegyunk@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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