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M&A 서둘러 2년넘긴 회사 아직 못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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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동호회장’으로 불리는 그는 유머와 부드러움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업에선 다르다. 한 일간지가 ‘마케팅비 1위’라고 보도한 내용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이전투구 상황에서 진흙으로 싸워야지 공자왈 맹자왈 할 순 없지 않느냐?”는 강한 입장을 표했다.

미국서 IPO·M&A 전문 변호사로 활동

어떤 사람에게 붙은 별명은 그 사람의 특징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관계, 그 사람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느냐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같은 특징이라도 주변 사람들이 어떤 느낌과 판단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표현 방식이 제각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 서치 엔진’이란 다소 웃음이 묻어 나오는 예전의 별명은 호기심 많은 그를 표현했다. 주택을 사는 큰 일에서부터 볼 영화를 고르는 일,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에게 사줄 장난감을 고르는 일까지 친구들이 그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단지 많이 알거나 호기심이 많았던 차원이라면 이같은 별명은 붙지 않았을 것 같다. 뭔가 그에게만 내재된 독특한 캐릭터가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라이코스코리아의 가종현 대표(34). 이제 국내 대표적 인터넷 기업의 CEO가 된 그의 회사 내 별명은 ‘동호회장’이다. ‘사장님’으로 불리지 않고 그저 ‘동호회장’, 또는 ‘시삽’으로 불린다. 라이코스 사이트 내의 수많은 커뮤니티 가운데 라이코스 사원들 모임인 ‘라이코스 클럽’의 시삽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볼링 등의 모임이 있는 이 클럽 안에서 사원들은 각종 이벤트나 모임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심지어 화장실을 고쳐 달라는 요구도 한다.

그런데 단지 사원들 커뮤니티의 시삽을 맡고 있다고 해서 ‘높으신’ 사장님을 오프라인에서도 동호회장으로 부를 수 있을까. 이유는 그가 직원들과 만들어내는 ‘스킨십’에 있었다. 그는 하루에 최소 한 번씩은 ‘일 잘∼ 하고 있는’ 사원들 뒤에 가서 불시에 안마를 해주곤 한다.

사실, 예전에 정문술 미래산업 대표·라이코스코리아 회장이 사장을 지낼 때는 연배 차이가 많아 직원들로서는 어려웠을 법도 하다. 젊은 CEO는 짧은 시간 내에 회사 구성원의 움직임을 상당히 분주하게, 그리고 또 젊게 바꿔 가고 있었다.

훈수 두는 자리서 실전 뛰는 자리로

하지만 그는 지난 5월 25일 미래산업 경영지원팀장에서 라이코스코리아 CEO로 전격 발탁되면서 한 때 ‘낙하산’ 아니냐는 회사 내·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다. 전 사법연수원장이었던 가재환씨의 아들로, 미국 시카고대학교 MBA를 따긴 했지만 결국 뉴욕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던 법률전문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더불어, 미국 굴지의 로펌인 스캐든 압스(Skadden, Arps, Slate, Meagher & Flom)에서 M&A 및 기업 재무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던 그의 경력을 두고 앞으로 벌어질 M&A 전쟁에 대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는 “경영지원팀장이란 일종의 ‘훈수 두는’ 자리에서 직접 ‘실전을 뛰는’ 자리로 옮긴 셈”이라며 훈수는 쉬운 일이라고 새삼 느낀단다.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굴지 기업의 CEO들도 별로 하는 일 없어 보이던 것과는 완전 딴 판이라는 것.

그가 보기에 CEO란 앞서 싸우는 장수로서의 리더가 아니고 수평 조직을 원활하게 조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업계를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사람들에 대한 애정, 회사의 비전을 현실화시켜 낼 수 있는 업무 능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대이므로 언어 능력도 상당히 필요하다. 또, 변호사를 했지만 인터넷이나 텔레콤 분야 IPO(기업 공개)나 M&A를 담당했기 때문에 앞으로 변화될 것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스스로 확신한다. 그는 “앞으로 얼마나 알고 연구하느냐에서 비전이 나올 수 있다”며, “목표를 정해 놓고 잘 안 됐을 때 솔직해질 수 있고 비판받을 수 있는 게 바로 젊음이 가질 수 있는 용기”라고 말한다.

라이코스는 지난 8월 말 이후 8천만 페이지 뷰를 돌파하면서 1천만 페이지 뷰였던 작년 말 이후 폭발적인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게 ‘엔터테인먼트 강화’의 결과다. 그는 라이코스의 엔터테인먼트 강화 전략에 대하여 “메가 포털로서의 전략 포지셔닝과 네티즌의 요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네티즌들은 한 사이트 내에서 모든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받기 원할 것이며,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네티즌들이 보다 많은 것을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로서 엔터테인먼트가 필수”라고 말한다.

오프라인의 대형 쇼핑몰, 고급 쇼핑몰일수록 문화 공간이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많은 것과 같다. 이들 쇼핑몰에서도 엔터테인먼트나 문화 행사가 당장 수익이 되지는 않지만 고객들의 질 높은 쇼핑 환경을 위해, 쇼핑 자체를 경제 활동을 넘어선 하나의 문화 활동으로 만들기 위해, 고급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것.

문제는 전자상거래가 충분히 발생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포털만이 시도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엔터테인먼트만 갖고 승부를 하겠다고 나선 일부 업체들에게도 다소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오프라인 근거 없이 온라인에서 출발한 업체들의 문제점,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 온라인이 모든 오프라인 부문을 통제하려는 데서 초래되는 과부하 현상, 오프라인이 온라인화 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 등에 대한 질문에 보다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어떤 기업이든 새로운 산업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며, 오프라인 기업은 아무리 온라인과 접목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사업 모델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온라인에 항복하고 종속되거나 주도권을 뺏길 것이라고 말한다. 산업 발전이란 관성의 끝이 온라인화로 가 있다는 말이다.

하반기 인터넷 기업들의 M&A 전망에 대해서는 “문제를 벗어나고 재무 구조를 낫게 하기 위한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후속 효과가 부정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무조건 M&A를 구세주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급하게 M&A를 해서 2년 이상 넘기는 회사를 못 봤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잘 되고 있다고 해서 남의 것을 갖다 붙이기보단 내 것을 하나라도 더 잘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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