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론, 오만과 편견의 합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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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재벌개혁론’이 드세지고 있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현상이다. 특히 올해는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겹친 해다.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추세다. 그래서인지 여야 모두 반(反)대기업, 비(非)대기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키로 했다. 앞서 민주통합당은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부활 등을 골자로 한 정책을 발표했다. 통합진보당은 강도 높은 ‘재벌개혁 로드맵’을 내놨다. 한결같이 기업 배싱(bashing·기업 때리기)이다.

 본지는 6, 7일 이틀에 걸쳐 10대 그룹 임원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전화조사를 했다. 공통된 대답은 “역대 선거 때와 비교해 가장 심한 압박” “계절풍이 아닌 태풍”이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오만함을 인정했다. “고쳐야 할 부분이 분명 있는데, 국민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나왔다. “빵집 같은 서민형 업종까지 건드린 건 자승자박”이라는 자평도 나왔다.

 그러나 ‘기업 배싱’만큼 확실한 득표 전략이 없다는 정치권의 편견과 속셈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울 땐 대기업에 상생을 요구하면서 이익이 나면 ‘해체하라’는 요구까지 한다. 지나친 기업 때리기는 기업에 대한 편견만 높인다”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여야 모두 기업 배싱에 나서 균형된 정책이 나올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더 강한 개혁 요구도 만만찮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지수 연구위원은 “재벌개혁론에 대해 ‘너무 나갔다’고 비판하는 것은 안이하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분위기를 의식한 듯 김황식 국무총리는 7일 정치권의 공약에 대해 “재정이나 기업활동에 과도한 부담을 가져오지 않는지 신중한 검토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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