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안철수와 문재인, 그리고 쫓는 손학규. 야권 차기 지형이 이렇게 삼각구도로 전개될 조짐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지지율 급상승으로 비롯된 변화다.
연초만 해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독주’였다. 그러다 문 고문이 지난달 9일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고, 안 원장이 정치 참여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판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6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 고문은 처음으로 양자대결 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0.5%포인트 차(문재인 44.9%, 박근혜 44.4%)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자대결 시 안 원장과의 지지율 격차는 2%포인트 이내(안철수 21.2%, 문재인 19.3%)로 좁혀졌다.
문 고문의 지지율에 다소 거품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갤럽이 3일 발표한 여론조사(휴대전화 방식)에선 다자대결 시 지지율이 박 위원장 35%, 안 원장 20%, 문 고문 14%로 나타났다. 양자대결(박근혜 45%, 안철수 38%)에선 박 위원장이 안 원장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위원장과 문 고문의 양자대결 조사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 고문 지지율이 상승 추세인 것만은 분명하다. 갤럽 조사에서도 1월 9일엔 8%에 불과했다. 1월 10일부터 10%를 기록하더니 약 한 달 새 두 자릿수대에 안착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안 원장과 문 고문 지지율을 합친 총량이다. 지난해 ‘박근혜 대세론’이 확산될 때는 범야권 주자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박 위원장에게 못 미쳤다. 그러나 일부 조사에선 ‘안철수+문재인’의 지지율 합계(40.5%·리얼미터)가 박 위원장을 멀찍이 추월하고 있다.
야권은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 시너지로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대세론’을 무너뜨린 바 있다. 두 사람이 ‘경쟁적 협력자’가 돼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페이스메이커(pacemaker)론’이다. 페이스메이커는 마라톤 등에서 주전 선수의 기록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입된 선수를 말한다. 두 사람이 상호 신뢰를 유지하면서 대선 레이스를 뛰고, 야권의 대표주자를 정하는 건 국민 선택에 맡기라는 얘기다.
문 고문은 안 원장에게 호의적이다. ‘힐링캠프’에 출연해 안 원장을 “‘박근혜 대세론’을 꺾을 유일한 인물” “정권교체의 희망”이라고 치켜세웠다. 반대로 문 고문에 대한 안 원장의 직접적 평가는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주변에선 “안 원장이 문 고문을 나쁘게 볼 이유가 전혀 없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안 원장은 무당파·중도층의 지지세를, 문 고문은 전통적 야권 세력에 기반한다”며 “뭉쳐지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누가 누구의 페이스메이커가 되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에 비하면 힘이 부치지만 손학규 상임고문의 공간도 여전하다. 문 고문에 비해 비(非)노무현계와 수도권·호남 세력을 흡수할 수 있고, 안 원장과 견줬을 땐 검증된 후보라는 점에서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결국 야권은 ‘안·문·손’ 3인 경쟁체제로 굳어질 것”이라며 “세 사람의 경쟁에서 나타날 시너지가 야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팬클럽 ‘나철수’ 창립=안 원장의 지지모임 ‘나의 꿈, 철수의 꿈, 수많은 사람들의 꿈(나철수)’이 9일 창립대회를 한다. 결성을 주도한 정해훈 선임공동대표는 “나눔, 화합, 미래, 진실을 추구하는 안 원장을 응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안 원장이 정치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외곽에서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안 원장 측은 “이 같은 움직임을 모른다”고 말했다.
양원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