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석유시장 주도권 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유가를 대폭 끌어내리려는 서방 선진국들과 이를 꺼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도권 싸움이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26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및 세계은행 총회를 계기로 일치단결해 OPEC측에 대대적 증산 등 근본적인 유가 안정책을 마련하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반면 OPEC은 미국의 전략 비축유 방출을 미봉책으로 폄하하는 한편 시간을 좀 더 갖고 시장의 반응을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OPEC 역시 같은 날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25년 만에 정상회담을 갖고 대응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IMF의 최고 정책결정기관인 통화금융위원회(IMFC)는 24일(이하 현지시간)주요 소비국들과 생산국들이 적정 유가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IMFC 위원장인 영국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비 OPEC 산유국들이나 전략 비축유 보유 국가들도 유가 안정을 위해 시장에 공급량을 늘리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고 말했다.

OPEC내 매파들을 겨냥한 듯한 이 발언은 대세가 증산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선진 7개국(G7)은 프라하 회의에서 소비국들의 비난 여론을 몰아 OPEC의 입지를 좁히는 동시에 미.일 등의 비축유 방출로 OPEC의 가격 결정권을 축소시킴으로써 국제 석유 시장에서 영향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호르스트 쾰러 IMF 총재는 24일 "고유가 기조가 계속될 경우 특히 빈국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는 것을 OPEC도 잘 알고 있다" 며 도덕성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빌 리처드슨 미 에너지 장관은 "한달 뒤 수급 상황을 지켜본 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전략 비축유를 추가 방출할 것" 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일본이 25일 고유가로 타격이 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회원국들에게 비축유를 지원할 의사를 비친 점도 이같은 공조(共助)의 연장선 상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릴와누 루크만 OPEC 사무총장은 24일 "전략 비축유 방출이 '비상사태' 라는 본연의 목적에 맞게 이뤄졌는지 의문스럽다" 며 "유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OPEC은 다음달부터 하루 80만배럴 증산에 나서는만큼 추가 공급분이 시장 수급 상황에 제대로 반영될 때까지 일단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고유가로 짭짤한 재미를 보는 마당에 성급히 행동함으로써 자칫 2년 전처럼 10달러 선을 맴도는 저유가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계산이 깔려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의 거센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번 OPEC 정상회담에서 증산 발표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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