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김치 체크 프라이스’ 자충수 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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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최선욱
경제부문 기자

지난해 우리나라의 김치 수출액은 역대 최고인 1억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세계 시장에서 값싼 중국산 김치의 물량 공세에 맞서고, 일본식 개량 김치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으니 자축할 만한 일이다. 정부는 여세를 몰아 농식품 수출 연 100억 달러 돌파를 올해 목표로 잡았다. 이를 위해 김치·인삼·파프리카·막걸리·김 등 25개 전략품목을 선정하고 경쟁력 확충을 위한 예산 투자 계획도 밝혔다.

 수출이 잘 되면 우리로선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외국의 감시 수위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이런 와중에 이상한 발언이 나왔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지난주 식품기업들과 만난 자리에서 “업체들이 ‘체크 프라이스’ 협약을 맺은 덕분에 작년 김치 수출이 역대 최고를 달성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체크 프라이스는 일정 가격 이하로는 수출하지 않는 제도다. 1980년대까진 덤핑수출 등 업체 간 과당경쟁을 막자는 취지에서 공식 제도로 운용됐다. 하지만 지금은 담합이라는 부당행위로 분류돼 수입 당사국이 조사·처벌할 수 있다.

 물론 서 장관이 80년대식 ‘체크 프라이스제’를 염두에 두고 발언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농식품부는 17개 수출협의회를 중심으로 업계 스스로 품질 등 자율 가이드라인을 지키도록 유도하고 있다. 제대로 만든 김치가 수출돼야 우리의 김치 브랜드가 높아지고 제값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 서 장관 발언도 업체들에 대한 애정과 애국심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하지만 외국의 경쟁 당국 입장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만한 표현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서 장관뿐만 아니라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도 지난해 12월 해외건설업체와 만난 자리에서 “저가 수주로 인한 손해를 막는 방안을 찾겠으니 업체들은 출혈경쟁을 자제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사업자 간의 담합도 원칙적으로 위법으로 본다. 행정지도가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로 인정되면 예외로 간주할 뿐이다. 다른 부처의 경쟁 제한적 규제를 감시하는 건 ‘경쟁 주창자’인 경쟁 당국의 중요한 업무다. 다른 부처에서 담합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언급이 나오고 있는데 물가 최전선에 나가 있는 우리의 공정위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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