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주범은 OPEC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미국과 유럽연합(EU)등 주요 석유 소비국들의 거듭되는 증산 압력에 시달려온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마침내 대대적인 반격을 취하고 나섰다.

고유가의 진짜 원인이 공급부족보다 소비 사이드에 있다고 역공을 취하고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제 석유시장의 유가가 기본적으로 수급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OPEC의 주장에도 귀담아 들을 구석이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OPEC가 고유가의 진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국제 투기꾼들의 농간, 대형 석유회사(메이저)들의 비축물량 감소, 높은 유류세율 등이다.
이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유가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급쪽에서는 지난해 3월 하루 2백10만배럴 감산 조치 이후 올들어 세차례에 걸쳐 모두 2백95만배럴을 증산, 이미 감산분을 만회하고도 남아 더 이상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OPEC는 이같은 근거로 지난 10일 하루 80만배럴 증산 발표 이후 일시적인 유가 하락을 들고 있다.

합의 이전에도 이미 공식 쿼터량보다 77만배럴 가량 뮌?물량을 공급, 증산 합의는 선언적 의미에 그치는 것이었는 데도 유가는 발표 직후 2달러 가량 하락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추가로 공급되는 물량이 거의 없는 데도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은 심리적 측면과 국제적인 큰 손들의 농간에 기인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1990년대 들어 석유 메이저들이 경영합리화의 일환으로 원유 비축분을 줄여 여유 자금을 다른 데 투자하면서 유가 조절기능을 잃은 것도 고유가의 원인이라고 OPEC는 지적한다.

메이저들은 70, 80년대에는 유가가 오르면 원유 매입을 줄이고 비축분을 방출, 유가 하락을 유도했었다.

OPEC는 이와 함께 미국이 경제제재 차원에서 이란.이라크.리비아의 석유산업 투자를 오랫동안 억제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증산능력이 정제시설 부족 등으로 한계에 달해 증산을 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다는 얘기다.

이란의 비잔 남다르 잔가네 석유장관은 "OPEC는 세계 석유의 40%밖에 공급하지 않는 데도 서방은 우리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린다" 며 "유가가 떨어졌을 때는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더니 유가가 오르자 우리에게만 화살을 돌린다" 고 불평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국인 미국은 동시에 만만찮은 생산국이지만 OPEC에만 증산 압력을 가할 뿐 자신들의 생산량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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