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엉덩이 때린 남학생, 적발 즉시 정학 5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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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서 킹 데이 다음날인 17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 로열하이츠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에서 교사가 귀가를 앞둔 학생들에게 차별과 편견을 갖지 말자는 내용의 책을 읽어주고 있다. [시애틀=김성탁 기자]

21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 윌슨중학교 교감실. 여학생의 엉덩이를 때려 적발된 한 남학생이 교감실에 불려와 있다. 이 학교 엠 제임스 교감은 “누구의 몸에도 손을 대지 마라. 네가 한 행동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여러 차례 나무랐다. 이어 가해 학생에게 ‘윌슨중 괴롭힘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했다. 서약서에는 모든 학생이 욕설이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공부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침해하면 용납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함께 어떤 행동이 성추행인지가 적혀 있었다.

 제임스 교감은 학생이 보는 앞에서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5분가량 단호하게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음을 알렸다. 그는 “성추행을 금지한 캘리포니아주 교육조례를 어겼고 이런 행위가 반복되면 강제 전학은 물론 퇴학까지 가능하다”며 “성추행은 범죄행위여서 사회 진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당 학생에게는 5일간 정학 조치가 내려졌다.

 한국에서는 학교폭력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까지 나오고 있지만 예방 교육이나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 등 학교의 생활지도 여건이 열악하다. 하지만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다양한 괴롭힘(Bullying) 행위에 대해 ‘제로 톨러런스(무관용)’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고 있었다. 학교폭력 대응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었다.

 주변이 펜스로 둘러쳐진 윌슨중은 주(主) 출입구를 통해 방문 예약을 확인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리처드 루커스 교장은 손에 무전기를 들고 교내를 돌아다녔다. 교감과 특임교사, 경비원 등도 무전기를 갖고 실시간 정보를 교환했다. 루커스 교장은 “모든 교실에 직통 전화가 설치돼 있어 괴롭힘이 발생하거나 침울해하는 학생이 눈에 띄면 즉각 교사들이 정보를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교장이나 교사들이 늘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친근감을 느끼게 해주려 애쓰는데, 이는 피해 학생이 부담 없이 상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학교에는 상담사와 계약직 심리학자가 포함된 학생관리팀이 꾸려져 있어 피해 학생을 돌본다. 가해 학생은 즉시 정학에 처해진다. 5일 단위로 최대 네 차례 정학을 받는다. 잘못이 계속되면 교장이 인근 학교로 강제 전학을 시킬 수 있다.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학군에서 추방된다. 파울라 사베드라 특임교사는 “무기로 위협하는 등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면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퇴학시킨다”며 “학생기록 파일에 가해 학생은 ‘불만족’ 등급과 함께 잘못된 행동을 적어 고교 졸업 때까지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가해자를 엄벌하는 원칙과 함께 미국 학교에서는 유치원 과정부터 괴롭힘 방지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17일 찾은 시애틀의 로열하이츠 초등학교에는 체육관 입구나 복도·사물함 등 곳곳에 학생들이 직접 만든 ‘괴롭힘 방지(Anti-Bullying)’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학교 측도 학년이 시작되는 9월부터 매월 존중·책임감·인내· 우정 등을 집중적으로 익히자는 연중 생활지도안을 작성해 복도 등에 게시해놓았다. 4학년 제이미는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남을 괴롭히는 것은 잘못이고 당하는 학생을 보면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웨인 플로이드 교장은 “매달 한두 차례 상담사가 학생들에게 역할극 등을 시키며 괴롭힘 예방 교육을 한다” 고 말했다.

윌슨중학교의 서약서 (학생·학부모·교감이 작성)

-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

- 욕설을 듣지 않고 성별·인종·종교·장애 때문에 위협받지 않으면서 배울 권리가 있다.

- 협박, 저속한 글, 부적절한 행동은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 괴롭힘을 모른 척해선 안 된다.

- 괴롭힘을 보면 교사·상담사 등에게 최대한 빨리 보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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