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줄이려 한 입학사정관제, 되레 사교육 부추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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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열린 한 사립대학의 입학사정관제 전형 설명회에 학부모 수천 명이 몰려 스탠드와 바닥 좌석이 가득 찼다. [중앙포토]<이미지 크게보기>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해 공교육을 바로 세우고 사교육을 잡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는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교육정책이다. 그러나 감사원 등에 따르면 A대학의 경우 입학사정관이 내신 1등급 학생을 우선적으로 뽑는 바람에 결국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이 유리해졌다.

 B대학의 경우 입학사정관이 어떤 요소를 비중 있게 보는지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또 C대의 학교장추천제나 D대의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선 정원의 일부를 우선 선발하는 1단계의 학생부 커트라인이 너무 높아 학생부 조작 등 비리의 유혹이 큰 것으로 지적됐다. 익명을 원한 서울 고등학교의 한 입시담당 교사는 “3년 내내 전교 1등을 해야 가능한 성적인 1.03등급이 커트라인이기 때문에 진학담당 교사들이 명문대 합격생을 만들려고 학생부를 조작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대학에서 수험생이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직접 쓰지 않고 학원이나 컨설팅 업체에 돈을 주고 대필하게 해도 입학사정관이 제대로 거르지 못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이번 실태조사와 별도로 전임 입학사정관이 4회(1회 90분) 300만원씩 받고 서울 강남 학원 등지에서 고액 컨설팅을 해온 사실(본지 2011년 7월 25일자 16면)이 밝혀진 적도 있다. 그러나 감사원은 아직 감사 일정은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사교육을 줄이겠다며 야심 차게 실시한 제도인 데다, 시행 중인 대학도 크게 늘어 감사원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속도전’을 하듯이 밀어붙였다. 입학사정관제의 모델인 미국에선 1920년대 도입 논의를 시작한 이후 30년대 들어서야 대학들이 본격 실시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시범 운영에서 본격 실시까지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선발인원은 이 대통령 임기 중 162배로 늘어났다. 2008학년도에는 10개 대학이 시범적으로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254명을 선발했으나 2009학년도에는 선발 인원이 4476명(2009학년도 40개 대학)으로 전년 대비 18배가량 늘었다. 2012학년도에는 4만1250명(122개교)으로 전체 4년제 대학 모집정원의 10.8%를 차지하게 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입학사정관제 활성화를 위해 대학에 지원한 예산도 2008학년도(2007년 지원) 10개교 20억원에서 2009학년도 40개교 157억원으로 뛰었다. 지난해는 60개교 351억원에 달했다. 이런 ‘과속’은 결국 부작용을 낳았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이 대통령부터 2009년 7월 라디오 연설에서 ‘임기 말께엔 상당수 대학이 거의 100% 입학사정관제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며 “정부가 예산 지원을 무기로 입학사정관제를 밀어붙이면서 생긴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조현숙·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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