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중국의 북한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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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
미 조지타운대 교수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 시절 백악관 근무를 마친 직후 베이징에서 열린 1.5트랙(半官半民) 북한 문제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미국 측 참석자는 백악관과 중앙정보국(CIA)·미국국제개발처(USAID)·국무부 출신 전직 고위관리들이었으며 중국 측에서는 준(準)정부대표라고 할 수 있는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중앙당교·중국군사과학원의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촉발될 북한의 불안정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자 중국 측 학자들은 코웃음을 쳤었다. 그들은 김정일의 건강이 서방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다. 2008년 뇌졸중에서 잘 회복했다는 것이었다. 또 북한의 체제는 매우 안정돼 있으며 3남으로의 왕조적인 권력 승계는 필연적인 일이며, 따라서 미국은 북한이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미국은 북한과의 평화적 외교에 집중해야 하며 6자회담에 복귀해야 한다고 강변했었다.

[일러스트=강일구]

 중국이 이 같은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북한 문제를 다루는 명확한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당시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중국의 핵심 목표는 한반도의 분단을 유지함으로써 북한이 전략적 완충지대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중국은 2008년부터 대규모 북한 광산개발계약을 맺어 왔으며, 이는 북한에서 자원과 원자재를 공급받아 낙후된 랴오닝(遼寧)성과 지린(吉林)성 등 동북부 지역을 성장시키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셋째, 중국 당국은 김정일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최소한의 지원만 하고 있었다. 넷째, 남한의 보복을 불러올 수 있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미국이 전면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은 미국이 북한과 외교적 접촉을 지속하도록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었다. 다섯째, 중국 측 참석자들은 북한 체제가 안정적이라는 신념을 우리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함으로써 미국이 북한과 협상에 나설 것을 압박했다.

 김정일이 사망한 뒤 중국은 마치 북한이 중국의 새로운 지방이나 된 것처럼 베이징 주재 주요국 대사들을 모두 불러모아 놓고 친애하는 북한 지도자의 서거를 ‘존중’하도록 요구했다.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들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면서 북한의 미묘한 정세를 악용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또 북한이 권력승계를 하는 동안 북한의 자주권을 존중해 달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김정은을 북한의 새 지도자로 인정하면서 중국을 공식 방문하도록 초청했다. 나아가 중국 고위 당국자들은 빠짐없이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을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중국보다 작은 또 하나의 공산국가를 지켜주기 위해 중국은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의 새 지도자를 승인하고 권력승계가 계획에 따라 잘 진행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입장에 대해 중국 사람들 스스로 얼마나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내 생각엔 중국은 북한 상황에 대해 근심걱정이 많을 것이다.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중국도 잘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김정일 생전과 달리 현재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당과 당, 군과 군 사이의 일상적인 접촉이 끊긴 상태다.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국무위원은 김정일과 개인적 친분이 깊었다. 그러나 김정은과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지도자는 아무도 없다.

 둘째, 중국은 북한이 불안정 가능성을 막기 위해 경제개혁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김정은이 그런 개혁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중국은 1979년 카리스마적 지도자 덩샤오핑(登小平) 덕분에 근대화 개혁에 착수할 수 있었다. 김정은이나 장성택에게 덩샤오핑의 카리스마는 없다. 돌이켜보면 중국은 김정일조차 설득하지 못했었다. 중국은 김정일이 중국에 올 때마다 컴퓨터 공장, 휴대전화 공장, 광섬유 공장 등을 방문토록 함으로써 김정일이 개혁에 착수하도록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했었다. 김정은을 상대로 한 설득이 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북한과 같은 취약한 독재국가가 권력승계가 진행되는 와중에 개혁개방을 생각할 순 없다.

 셋째, 내가 만나본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예외 없이 김정일 사후 북한이 장기적으로 안정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정일이 준비해 놓은 것들이 모두 끝날 것으로 보이는 4월 15일 이후에도 김정은이 계속해서 통치할 수 있을 것인가. 김정은이 첫 독자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이는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의당 제기되는 의문들이며 지금 중국에서도 같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김정일이 사망하기 전 미국과 한국에 대해 북한과 협상에 나서도록 강하게 요청했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눈에 띄게 침묵하고 있으며 모든 관련국들에 ‘자제’를 요청하면서 외교 노력을 펴도록 압박하는 강도가 약해졌다. 중국 역시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일 사망 직후에 불안정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앞으로도 안정을 유지할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다. 북한에서 새로운 국면이 발생한 지 겨우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남한 정치사에서 군사 쿠데타로 실각한 두 차례의 과도 정부조차 한 달 이상 유지됐었다. 터키에선 새 정권이 5~7개월 이상 지속되다가 쿠데타로 무너진 적이 여러 번이다. 흑룡의 해에 중국의 근심걱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빅터 차 미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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