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띠에겐 특별한 게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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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30면

23일부터 음력으로 진짜 용의 해가 시작된다. 서양에서 용은 전설 속의 두려운 생명체다. 흔히들 불을 내뿜어 사람을 태우고, 남은 뼈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을 연상한다. 반면 한국에서 용은 훨씬 더 활기차고 친근하다. 무엇보다도 상서로운 존재인 듯하다.

나는 최근 결혼한 친구를 통해 한국인들이 연상하는 용의 이미지가 어떤 건지 알게 됐다. 친구 부부는 올해 아이를 낳기로 계획했다고 한다. 그 자체는 충격적일 게 없다. 결혼했으니 아이를 갖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친구는 그저 빨리 아이를 갖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내게 진지하게 “‘용띠 아기’를 낳고 싶다”고 말했다. 말투에서 농담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정말 심각하게 12간지에 근거한 운명론적 사고로 출산 계획을 세운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그런 사람이 내 친구뿐만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글을 검색해 봤다. 12년 전 용띠 해인 2000년, 아시아 국가에 있는 산부인과 병원들은 예년의 신생아 숫자보다 5~10% 더 많은 아기를 받았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또다시 출생률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용띠가 뭐길래 출생률까지 높아질까. 내 친구가 올해 아기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용띠라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할 만큼 똑똑하고 예쁜 것은 물론 돈도 많이 버는 사람으로 자랄 것인가. 그렇다면 12년마다 우리는 다른 띠보다 우월한 용띠들이 태어나는 광경을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흥미로운 건 용은 12간지 동물 중 유일하게 가상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에 실제 존재한 흔적이 없기 때문에 더 황홀하고 신비롭다. 그런 이미지가 용띠들을 뭔가 특별하고 멋진 사람, 행운을 타고난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나는 양띠다. 누군가 양에 대해 자랑해 보라면 내가 생각해도 초라할 것 같다. 용에 대해 설명할 때의 열정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살짝 화가 날 만하다. ‘부모님은 왜 나를 언제 낳을지 좀 더 심사숙고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양인의 눈에 동양의 12간지가 전혀 이상하진 않다. 미국에서도 ‘조디악(황도 12궁)’이라는 12개의 별자리에 따라 운명을 점치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에선 태어난 해가 아니라 태어난 달에 따라 별자리를 정한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동양식 12간지에 따른 자신의 띠는 모르지만 자신이 태어난 달의 별자리가 뭔지는 안다. 미국인들 상당수는 태어난 달의 별자리 운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내 친구가 용띠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말이다.

서양에서 동양식 12간지를 접하는 경우란 중국식당에 갈 때를 빼곤 별로 없다. 싸구려 식탁보에는 어김없이 화려한 동물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자리에 앉으면 종업원들은 서비스로 ‘포춘쿠키(운세과자)’를 준다(실제 중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쿠키를 들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쿠키 속에는 12간지에 따른 운세가 적힌 쪽지가 들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양인은 그저 신기한 장식품 정도로 여길 뿐이다.

동양은 음력, 서양은 양력을 쓴다. 1년은 똑같이 열두 달인데 각각의 날짜에 부여하는 의미는 다르다. 하지만 동서양 모두 생일에 따라 운명을 정하고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건 매한가지다. 양쪽 다 카오스적인 우주에 뭔가 질서를 부여해 세상에 안정감을 꾀하려 했던 건 아닐까.

물론 12간지의 동물들은 좀 더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다. 2012년 용의 해는 어떤 1년이 될까. 바라건대 상서로운 기운을 지닌 아시아 버전의 용이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서양 버전의 용을 꺾길 바란다. 용띠 해, 우리의 인생이 기회와 열정으로 가득 차길 기원해 본다.



미셸 판스워스 미국 뉴햄프셔주 출신. 미 클라크대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아트를 전공했다. 세종대에서 MBA를 마치고 9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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