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승객 버리고 달아났던 선장 … 재승선 명령도 열 번 넘게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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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티노 선장이 17일 치안법원에서 심리를 마친 뒤 경찰에 이끌려 법원을 나서고 있다. [그로세토 로이터=뉴시스]

지난 13일(현지시간) 토스카나 제도 질리오섬 인근에서 좌초한 이탈리아 호화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의 선장이 뭇매를 맞고 있다. 승객들이 대피하기 전에 먼저 탈출했을 뿐 아니라 배로 돌아가 승객을 구하라는 해안경비대의 명령에도 불복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중앙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콩코르디아호의 프란체스코 스케티노(52) 선장과 해안경비대 그레고리오 데 팔코 대장이 무선으로 나눈 대화의 녹취록을 공개했다고 AFP통신 등이 17일 보도했다. 데 팔코 대장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스케티노 선장은 “2등 항해사와 함께 구명보트에 있다”고 답했다. 경찰에 체포된 뒤 자신과 선원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배를 떠났다는 스케티노 선장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데 팔코 대장은 “빨리 사다리를 타고 배에 다시 올라가서 몇 명이나 남아 있고, 그 가운데 어린이와 여성 등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스케티노 선장은 “내가 여기서 구조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지금도 배가 기울고 있다” 등 갖가지 핑계를 대며 명령을 듣지 않았다. 스케티노 선장이 “지금 굉장히 어둡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하자, 데 팔코 대장은 “그래서 어쩌란 건가. 어두워서 집에 가고 싶다는 건가. 당장 배로 돌아가서 도움이 필요한 승객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한 뒤 보고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 시간이 넘도록 어르고 달래며 10여 차례나 명령했지만, 스케티노 선장은 다시 배로 돌아가지 않았다. 데 팔코 대장은 “나중에 이 일을 꼭 따지겠다. 당신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욕설을 퍼붓기에 이르렀다. 당초 스케티노 선장이 정해진 항로에서 벗어나 암초가 많은 질리오섬 해안에 지나치게 배를 가깝게 붙인 이유도 드러났다. AP통신은 “선장은 질리오섬 출신인 식당 서빙 책임 웨이터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섬에 접근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 등은 “선장이 섬 가까이 가서 웨이터에게 ‘봐, 네가 살던 섬이야’라고 말한 직후 유람선이 암초에 부딪혔다”며 “이 웨이터의 여동생은 페이스북에 유람선이 섬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그 뒤 50분 만에 사고가 났다”고 보도했다.

 이날 수색대가 유람선에서 시신 5구를 추가로 찾아내면서 이번 사고로 인한 희생자는 11명으로 늘었다.

 한편 이번 사고의 생존자 가운데 100년 전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 살아남은 여성의 손녀가 있어 화제가 됐다. 약혼자·오빠 등과 함께 콩코르디아호에 탔던 이탈리아인 발렌티나 카푸아노(30)는 AFP통신에 “역사가 반복되는 것 같아 정말 두렵고 충격적이었다”며 “오로지 할머니처럼 살아남을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선장과 해안경비대장의 대화

대장 “당장 배에 남아 있는 승객 수를 파악하시오.”

선장 “100명 정도 남아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배를 버리고 나온 상황이라….”

대장 “100명이 있는데 배를 버리고 나왔다고? (욕설) 어서 돌아가서 구조작업을 도우시오.”

선장 “지금도 배가 기울고 있고,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대장 “그래서 어쩌라고? 어두우니까 집에 가고 싶나? 벌써 시신이 보이기 시작한다니까!”

선장 “그래요? 몇 명이나요?”

대장 “세상에, 당신이 바로 그걸 파악해서 알려줘야 하는 사람이잖소!”

(선장은 대화 끝에 배로 복귀하겠다고 했지만, 그대로 육지로 올라와 택시를 타려다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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