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영화〈불가사리〉의 묘한 매력

중앙일보

입력

극장 개봉당시〈불가사리〉는 세인의 관심과는 달리 너무 일찍 종영해 버렸다. 얼마 전 이 영화가 비디오로 소리 소문 없이 출시됐다. 극장 개봉 당시 영화를 보지 못했던 터라 비디오가 출시됐다는 말에 일찌감치 동네 비디오 가게를 찾았다.

비디오가 들어왔냐는 말에 비디오 가게 아저씨는 다소 난감해 하는 표정이었다. 비디오가 들어오긴 했지만, 이 영화가 과연 수지 타산이 맞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아직 비닐 커버를 개봉하지도 않은 채 뒤 칸에 꽂아 두었던〈불가사리〉비디오를 만지작거리면서 아저씨는 잠시 상념에 빠졌고, 결국 '통일의 물꼬'를 틀 결심(?)
을 하시고, 비디오를 풀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비디오를 빌려볼 수 있었다.

〈불가사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었다. 물론 극장에서 6000원을 내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달리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나칠 정도로 줌(zoom)
이 사용되고, 정돈되지 않은 듯한 카메라 움직임과 촌스럽게 보이는 세트, 연극처럼 보이는 과장된 제스처, 익숙하지 않은 말투가 영화에 몰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보여준 이야기는 사뭇 흥미로웠다. 불가사리는 밥알로 만들어진 괴물이다. 대장장이였던 할아버지는 농기구를 숨겼다는 죄목으로 못된 관리에게 고초를 당하고, 감옥에서 굶어죽을 상황에 처한다. 딸이 몰래 던져준 밥을 먹으려던 대장장이는 밥알로 불가사리를 만든다. 대장장이의 혼이 불가사리에게 이전된다.

죽은 할아버지의 손에 쥐어져 있던 불가사리를 집으로 가져온 딸은 바느질을 하다 바늘에 손을 찔려 피를 흘리고, 흘린 피 덕분에 불가사리가 소생한다. 쌀로 빚어져, 피로 소생한 불가사리는 쇠를 먹고 자란다. 불가사리는 처음엔 마을에 있는 농기구, 쇠붙이들을 먹었고, 차츰 자라나면서 칼과 창, 심지어 쇠로 만든 대포를 먹기까지 한다.

가난에 찌든 민중들은 봉기하고, 불가사리 덕분에 봉기한 농민들은 온갖 무기로 무장한 관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점점 불가사리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비대해진 몸짓에 비해 그가 먹을 수 있는 쇠가 터무니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면 칼과 창을 녹여 보습을 만들어야만 한다. 불가사리는 그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여인은 애물단지가 된 불가사리를 보며 슬퍼한다: '이제 이 나라에는 쇠붙이가 모자라겠지. 그땐 사람들이 널 앞세우고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그럼 온 세상은 전쟁 마당으로 화할게고. 세상은 망한다. 아니, 안되지. 그럴 수야 없지...'

반전의 메시지가 가득 담긴 여인의 대사는 사실 감동적이었다. 여인은 스스로 불가사리의 제물이 되고, 불가사리와 더불어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아직 커지기 전의 조그맣고 귀여웠던 불가사리의 혼이 여인의 몸으로 스며드는 장면으로 끝난다. 대장장이의 혼이 불가사리에게 들어가고, 다시금 불가사리의 혼이 여인에게 이전되는 과정은 대장장이와 불가사리, 여인간의 미묘한 연대감을 느끼게 해준다.

불가사리가 없었다면 농민 봉기는 실패했을 것이지만, 농민 봉기가 이루어지고 나면 불가사리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여인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불가사리가 계속 존재한다면 전쟁이(특히 외국과의)
불가피하다. 불가사리의 이 기묘한 운명과 여인의 자살과도 같은 헌신이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불가사리는 죽지 않는다는 '불가살(不可殺)
'이라는 말에서 나온 괴물이다. 죽지 않지만 계속 살기 위해서는 쇠를 먹어야 한다. 쇠는 농민(민중)
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그 수단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괴물의 식성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다. 혹자는 그래서 불가사리가 '공산주의 정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은 단지 봉기(혁명)
를 위해서만 필요할 뿐이다. 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만약 이런 해석이 옳다면 이 영화는 기존의 북한체제를 고려할 때, 그리고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86년이라는 시기를 고려할 때 반전 사상은 물론 반당(反黨)
사상까지 담은 대단히 충격적인 영화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혹 불가사리는 일종의 '자본' 혹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이 아닐까?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일본의 테크놀로지와 신상옥 감독이라는 외부인(사실 같은 민족이긴 하지만)
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 북한 최초의 SF영화인〈불가사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이 만들어낸 기술과 자본주의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 절실했다.

하지만 불가사리가 점점 커질수록 천덕꾸러기가 되듯이,자본주의가 커질수록 그것은 괴물이 되고, 급기야 민중의 원수가 될 수도 있다. 아주 작은 불가사리는 귀엽고, 앙증맞아 보이지만(적절한 자본주의)
불가사리가 점점 커질수록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된다(완전한 자본주의화는 위험스럽다!)
. 추측컨대 여인(북한인)
의 두려움은 이런 사실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음 주면 분단 상황을 다룬〈공동경비구역JSA〉가 개봉한다. 분단의 비극을 다룬 또 다른 영화들이 기획 중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분단을 넘어서는 일은 남북한이 서로에게 겨눴던 총부리를 치우고, 쇠(무기)
를 녹여 보습을 만드는 과정이며, 서로의 문화와 감성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우리?뉴柰』潁?돋?보고 의아해 했듯이 북한 사람들도〈공동경비구역JSA〉를 보고 당혹해 할지 모른다. 서로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비록 지루하게 느껴질지라도〈불가사리〉를 꼭 한번쯤은 봐야만 하지 않을까? 친구가 늘어놓는 고민이 지루하다고 외면해버린다면 그걸 친구라 할 수 있을까?

Joins 엔터테인먼트 섹션 참조 (http:enzon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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