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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는 문명사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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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유럽의 어느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 사람 두 명이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남자인지 여자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두 사람이 싸우는 줄 알고 공항 직원이 신고를 했다. 경찰이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린 조용히 귓속말을 했을 뿐인데요….” 십수년 전 공항에 근무하는 한국 항공사 직원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다.

 얼마 전 미국의 한 공항에서는 탑승을 기다리던 한국인 승객들이 고성을 지르며 드잡이를 하는 바람에 몇 시간씩 비행기 이륙이 지연되기도 했다. 침소봉대할 생각은 없다. 한국인의 매너 수준이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남 생각 않고 시끄럽게 떠드는 버릇은 여전한 것 같다.

 엊그제 동료와 함께 회사 근처 식당에 갔는데 시끄러워서 도저히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손님 한 명이 초저녁부터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참다 못한 동료가 나서 호통을 치는 바람에 다행히 수그러들긴 했지만 하마터면 시비가 붙어 한바탕 난장판이 벌어질 뻔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 통화를 하거나 일행과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중요한 일인가 해서 보면 별일도 아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허접스러운 잡담이 대부분이다. 이어폰을 꽂고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은 좋은데 옆 사람에게 다 들릴 정도로 볼륨을 높이고 듣는 경우도 많다. 음식점에 가면 마치 자기네가 업소 전체를 전세라도 낸 것처럼 주변 손님 무시하고 마구 떠드는 단체손님들도 있다.

 조곤조곤 조용히 말해도 다 알아들을 텐데 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은 그만큼 머리가 비었다는 뜻이다. 말의 내용이 부실하니 목소리라도 커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는 원시·야만 사회이지, 문명사회가 아니다.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때 NHK의 재난방송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 엄청난 대재앙의 충격 앞에서 방송 진행자의 목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차분할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텔레비전 뉴스 진행자들은 평소에도 목소리 톤이 너무 높다. 앵커맨이나 앵커우먼도 그렇고, 리포터도 마찬가지다. 물어보니 ‘솔’ 음계부터 멘트나 리포팅을 시작해야 전달력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건지 의문이다. 텔레비전부터 톤을 좀 낮췄으면 좋겠다.

 확실히 우리 사회는 시끄러운 사회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봐도 목청 큰 몇 사람이 담론을 지배하는 구조다. 사회가 시끄럽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감이 없다는 뜻이다. 소곤소곤 얘기해도 소통할 수 있는 사회가 안정된 사회이고, 품격 있는 사회다. 이제부터라도 제발 목소리를 낮추고 좀 조용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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