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터널 통행료도 시장경제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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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바다로 둘러싸인 홍콩 섬에서 대륙의 주룽(九龍)반도로 가려면 빅토리아 만을 건너야 한다. 바다 밑에는 세 개의 해저터널이 깔려 있다. 가장 오래된 중부터널은 1972년 홍콩 정부가 건설했다. 동.서부터널은 중화권의 재벌인 중신타이푸(中信泰富.CITIC)가 돈을 댔다.

해저터널들은 홍콩의 남북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다. 그러나 터널 징수료는 모두 다르다. 택시 기준으로 중부터널은 10홍콩달러(약 1300원.편도)다. 동부(15홍콩달러).서부(35홍콩달러)보다 훨씬 싸다.

징수료는 승객이 낸다. 따라서 택시로 터널을 통과할 일이 있으면 심사숙고해야 한다. 97년 건설된 서부터널을 넘을 땐 징수료가 주행 요금보다 더 나올 때가 많다. 뭔가 바가지를 쓰는 기분이 들지만 법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요즘 홍콩에서 '터널 논쟁'이 한창이다. CITIC 측에서 동부터널의 징수료를 60%나 올릴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89년 건설된 동부터널은 2016년까지 CITIC가 요금 징수권을 갖고 있다. 징수료가 인상되면 중부터널로 차량들이 더욱 몰릴 것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지금도 싼 요금 때문에 하루 평균 12만여 대가 통과한다. 적정 규모(7만8500대)를 훨씬 넘는다.

주변 도로까지 엄청나게 막히는 형편이다. 반면 동.서부터널은 한적하다. 동부는 하루 평균 7만3478대, 서부는 3만9188대에 그친다. 적정 규모를 한참 밑돌아 차량 소통이 원활하다.

홍콩 정부는 교통 대책 차원에서 동.서부터널의 매입을 검토 중이다. 터널 간의 징수료 차이를 줄여 차량 흐름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CITIC 측은 이에 대해 "차라리 우리가 중부터널을 산 뒤 요금을 조정하겠다"고 큰소리친다.

재미있는 것은 운전기사들의 반응이다. 50대의 마이클 위는 "바쁜 사람은 서부터널, 돈 없는 사람은 중부터널을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것이 시장경제 논리라는 것이다.

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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