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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밥을 먹여준다 재난의 상처도 치유한다 예산이 홀대 당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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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해 말 곤도 세이이치(近藤誠一) 일본 문화청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 비와호(琵琶湖) 지역의 불교미술’ 전시회(2월 19일까지)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개막식을 마치고 저녁에 서울 성북동 일본대사관저에서 한·일 양국 관계자 몇 명이 식사 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참석했다. 외교관 출신인 곤도 장관은 특히 문화외교·공공외교 전문가로 유명하다. 『미국 보도로 본 일본』 『일그러진 일본 이미지』 등의 책도 썼다. 피아노·유화에 능하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을 특히 좋아해 “내 장례식 때 연주해달라”고 미리 점찍어 놓은 사람이다.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다 동일본 대지진이 화제에 올랐다. 지금도 후유증이 계속되는 동일본 대지진은 수천 년 역사와 문명, 삶의 뿌리를 통째로 쓸어버린 엄청난 재앙이었다. 오직 생(生)과 사(死)만 중요할 뿐 다른 건 안중에도 없었을 것 같은 비극의 현장에 대해 곤도 장관은 ‘문화’를 이야기했다. 인상적이었다. 지진으로 약 700곳의 국가지정문화재가 파손되고 박물관 등에 있던 유물·전시품 수십만 점이 피해를 보았다. 일본 문화청은 문화재 손실 파악·수습·복원에만 주력한 게 아니었다. 문화의 힘을 발휘해 주민 돕기에 나섰다. 곳곳에서 자선콘서트를 열어 의연금을 모았다. 한편으로 음악인·연극인들이 피해지역을 찾아가 공연을 통한 ‘마음 치유’를 시도했다. “당장 빵이나 물이 더 급했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곤도 장관은 “처음엔 그런 말도 나왔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노래를 듣고 싶다’는 요청이 쏟아지더라”며 “역시 문화는 삶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 곤도 장관도 일본에서 문화분야가 상대적으로 홀대받는다고 느끼는 눈치였다. “정부예산 중 문화예산 비중이 프랑스 1%, 한국도 0.6%인데 일본은 0.11%”이라며 서운해했다. 물론 문화예산은 ‘문화’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느냐에 따라 통계가 달라진다. 문화 인프라가 탄탄한 일본과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갓 들어선 한국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체육·관광이 포함된 우리 문화체육관광부의 올해 예산은 정부재정 대비 1.14%. 지난해 1.12%에서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소득 2만 달러 국가들의 평균 2.2%보다 한참 아래다.

 “문화가 밥 먹여주느냐”는 질문은 이제 우문이다. 문화는 밥을 먹여준다.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예산의 칼을 쥔 사람들 인식만 뒤처져 있을 뿐이다. 지진으로 다친 마음 어루만지고, 범죄자가 될 뻔했던 아이들을 구원하는 것도 문화의 힘이다. 그러나 문화예산을 2% 선으로 끌어올리겠다던 현 정부 출범 당시의 다짐은 이미 공염불로 전락했다. 다음엔 누가 또 빈 약속을 해댈까. 지레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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