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갓집 옆에서 살던 신혼 의사 부부, 결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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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심모(34)씨는 연애 6개월 만인 지난해 8월 장가를 들었다. 하지만 신혼 때부터 처가와 사이가 불편했다. 장모는 심씨가 결혼 전 마련한 집에 대출금이 얼마나 끼어 있는지 확인할 정도로 꼼꼼했다. 부인이 늦게 들어와 다툼이 생기면 신혼집과 5분 거리에 있는 처가 식구들이 총출동했다.

장모는 “우리 딸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며 리모컨이나 전화기를 던지기도 했다. ‘OO야’라며 이름을 불렀고, 화가 날 때는 ‘×새끼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둘 사이 싸움이 계속되자 결혼 7개월 만에 장인이 먼저 “차라리 헤어져라”며 위자료 3000만원을 요구했다. 심씨는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던 옛말이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고 말했다.

 장모와의 갈등이 심씨만의 문제일까.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의 고부(姑婦) 갈등 대신 장모와 사위 간 장서(丈壻) 갈등이 파경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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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결혼정보업체 비에나래(대표 손동규)가 지난해 재혼 상담을 신청한 남성 138명에게 이혼 사유를 물어 종합한 결과 ‘처가의 간섭 및 갈등’이라는 응답이 26.1%로 가장 많았다. 여성 186명 중 ‘시가의 간섭 및 갈등(17.2%)’이라고 응답한 비율보다 8.9%포인트 높았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등식이 깨지고 있다.

 장서 갈등이 심각해지는 이유는 딸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처가와의 갈등으로 지난해 이혼한 김모(35)씨는 “전처가 외동딸이다 보니 장인어른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며 “석사 이상 학위를 가질 만큼 부모 교육열도 대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딸에 대한 기대는 높은데 사위가 그만큼 채워주지 못하면 처가에서 쉽게 실망했다”고 했다. 비에나래 손 대표는 “여성이 학력 높고 좋은 직장을 가진 데다, 자녀 수가 줄면서 결혼한 딸에 관심을 끊지 않는 부모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딸이 부당한 대접을 받으면 처가에서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임신과 출산, 육아 문제를 처가의 도움으로 해결하다 보니 사위와 장모 간에 부딪히는 횟수도 많아졌다. 종합병원 외과의사 백모(37)씨는 2009년 같은 병원 내과의사와 결혼하면서 서울 처갓집 옆에 집을 구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장모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장모가 신혼집을 들락거리면서 사위에게 “진공청소기도 돌리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오라”며 핀잔을 주자 부부 사이가 틀어졌다.

 가족 상담 전문가들은 장서 갈등을 해결하려면 딸의 ‘정치력’이 십분 발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부행복연구원 최강현 원장은 “처갓집 영향력이 막강한 상태에서는 남편이 소외감을 갖지 않게 배려하는 부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모의 힘이 세져 부부의 사적인 분야까지 관여한다면 부인이 막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가사 전문 이명숙 변호사는 “결혼 이후에도 모녀 관계가 자매처럼 가까우면 자칫 딸의 부부생활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딸이 결혼을 했으면 독립된 가정으로 보고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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