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집약형 산업의 한계 보인 한진중 사태 … 조선업, 수출보국 했지만 이젠 중국에 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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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8월 24일은 한국 조선산업의 역사에서 특별한 날이다. 이날 부산의 대한조선공사에선 6000t급 화물선의 진수식이 열렸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대형 화물선을 건조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조선공업의 개가이며, 세계 조선 무대로 진출하는 계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때 이후 한국의 조선업은 성장을 거듭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조선대국으로 발돋움한다. 그 과정에서 조선소를 중심으로 수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 다. 조선업은 박정희식 수출주도형 제조업 육성 전략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그때의 조선공사가 지금의 한진중공업이다.

 41년이 지난 2008년 7월 4일. 한진중공업이 필리핀의 수비크만에 조성한 조선소에선 글로리아 아로요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4300TEU급 컨테이너선의 진수식이 열렸다. 이 배는 한진중공업이 2007년 5월부터 수비크에 조선소를 조성하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건조한 배였다.

수비크 조선소 직원은 2만 명에 이른다. 한국인 경영진과 유럽인 기술진 일부를 빼면 거의 모두가 필리핀 사람이다. 필리핀은 한진중공업의 조선소를 유치하기 위해 231만㎡의 대형 부지를 한 달에 1000원만 받고 50년간 빌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일자리 2만 개를 챙겼다.

 필리핀의 수비크 조선소가 북적북적 돌아가는 사이 부산의 영도 조선소에선 썰렁하게 빈 건조용 도크를 뒤로 한 채 사상 최장의 고공 크레인 농성이 벌어졌다. 한진중공업의 생산직 직원 400명의 구조조정이 발단이었다. 농성이 일어나기 전까지 3년간 영도조선소는 단 한 건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다.

대형 선박을 수주하기엔 규모가 작고, 중소형 선박은 저임금의 중국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한때 한국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영도조선소의 면적은 26만4462㎡로 현대중공업의 3%에 불과하다. 이제 부산에서 조선소 부지를 넓히는 건 불가능하다.

2010년 세계 조선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47.7%로 한국(32.8%)보다 높았다. LNG선이나 해양플랜트 같은 고급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선 한국이 여전히 앞서지만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분야에선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70년대에 꽃피웠던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때 수출의 주역이었던 섬유·가발·신발·가전산업은 이제 더 이상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또한 저임금의 단순노동력이 필요한 일자리는 요즘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도 아니다. 반면에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제조업은 갈수록 일자리가 줄고 있다.

특별 취재팀=채승기·김경희·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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