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패션 여성 상품화의 상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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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텍사스를 덮쳤던 김강자 종암경찰서장의 다음 주타격 목표는 공주 패션이 돼야 옳다?' 젊은 여성 패션 비평가 한명이 새로운 주문을 들고 나왔다.

앙드레 김의 드레스 패션에서 비롯돼 윤락가 유리창 안에서 예외없이 보여지는 여인들의 공주패션 유니폼에까지 일반화된 옷차림에는 '은밀한 형태의 남근중심주의' 와 '여성 상품화 논리' 가 깔려 있기 때문에 당연히 같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논리다.

한성대 김성복(의상학과)교수가 최근 나온 계간 〈디자인문화비평〉(계간)제3호에 기고한 논문 '공주패션과 미아리 텍사스 블루스' 가 문제의 글이다.

도발적인 그의 논문은 일상의 삶에 숨어 있는 남녀 불평등문제 등에 미시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의 달라진 문화연구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논문에 따르면 비현실적일 정도로 로맨틱한 공주 드레스풍 패션은 디자이너 컬렉션이나 대학교수들의 연구실적용 전시회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다분히 한국적 현상. 특히 몇해 전 공주병 열풍은 파티복 수준의 드레스를 20대 여성들의 일상복으로 바꾸는 유행까지 낳았다.

구체적으로 한국 공주패션의 원조는 앙드레 김. 물론 그 자신은 '로맨틱한 여성미를 강조하는 패션철학' 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그의 드레스 패션이 알게 모르게 카피한 대상은 19세기 프랑스 나폴레옹1세 시절의 '엠파이어 드레스 스타일' . 높은 허리선, 깊게 파인 목선을 강조하는 이 스타일은 '여성〓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 라는 남근(男根)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는 것이 김교수의 지적이다.

이후 이 패션은 19세기 중반 여성의 관능적 곡선미를 강조하는 남성 디자이너 찰스 워스가 차용하면서 남성들의 성적 기대감을 높였다.

"미술사가 앤 홀랜더가 분석했듯이 찰스 워스의 환상적 드레스는 여성들에게는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공주가 된 듯한 느낌을 주지만, 실은 남성의 성적 상상력을 만족시키는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김교수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간다. 앙드레 김이 19세기 드레스의 전형을 따른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한국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로서 1백50년 전 서양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을 답습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가 온갖 미녀선발대회의 심사위원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교수의 논지는 금세기 페미니즘의 엄호사격을 받는다. 여성 옷은 더이상 '겉만 화려한 감옥' 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 사례로 새롭게 나타나는 유럽의 패션경향을 든다. 여성의 주체적 자아를 순수하게 표현하는 안티 공주패션의 비오네와 일본 출신 가와쿠보 등은 '전혀 새로운 여성상' 을 추구하고 있다.

베르사체 패션도 제1세대 자아니 베르사체가 '섹시한 고급 창녀 드레스풍' 을 추구한 것과 달리 그의 여동생이자 후계자인 도나텔라는 자연풍의 여성패션을 다루고 있다.

"구한말 이후 동경 속의 서양공주 드레스는 6.25의 양공주와 미아리 텍사스의 유니폼이 됐고, 졸부들 취향을 위한 앙드레 김 패션을 낳았다. 김강자 서장의 노력은 이제 공주패션의 극복에서 시작돼야 옳을지 모른다." 김교수의 의미심장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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