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마지막 수퍼마켓 시찰이 유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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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의 대표적 국제문제 전문가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68)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21일 “김정은이 경제개방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군부와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이데올로기적 밀월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나바시는 이날 중앙일보·JTBC와의 공동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아버지(김정일)의 고귀한 유산이라 생각하는 핵 개발 정책을 그대로 추진할 것이며, 나아가 부친이 미국의 견제로 하지 못했던 우라늄 고농축 핵 실험을 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의 후계체제에 혼란은 없을까.

 “당분간 북한 군부도 추이를 볼 것이다. 현재 군부 내 주류파는 김정일이 세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바로 쿠데타로 가진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중국의 지지다. 중국은 김정은 후계체제를 축복은 하지 않지만 인정은 했다. 김정일은 총비서 취임 후 중국을 여덟 번 방문했는데 그중 네 번은 지난해 5월 이후에 몰렸다. 이는 중국에 ‘(김정은을) 잘 부탁한다, 지지해 달라’는 마지막 필사의 외교였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이 향후 큰 전략적 결단을 할 때 군부가 정말 지지해 줄 것인가는 불투명하다.”

 -어떤 시점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난 외교정책보다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중국과의 경제협력, 경제개방 규모와 시기, 국유기업 민영화 및 사기업 인정 등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2단계로는 여러 이권이 얽혀 있는 군부를 어떻게 경제개방 작업으로 협력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더 어려운 게임이 될 것이다.”

 - 김정은이 무리해서 경제개방 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김정일의 마지막 시찰(15일)이 수퍼마켓이었다는 건 어찌 보면 마지막 메시지였다. 개혁·개방까지는 안 되더라도 경제를 제대로 챙겨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해야 한다는 김정일의 유훈이었던 셈이다.”

 -대외정책은 유화적으로 갈 가능성이 있나.

 “6자회담은 더 멀어졌다. 김정은에게 핵은 부친에게 물려받은 고귀한 유산이다.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거래 대상이 아니다. 일종의 ‘성역’이다. 나아가 김정은은 부친이 미처 못한 것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건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 개발, 핵 실험이 될 것이다. ”

 -한국, 미국 등이 김정일 사망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게 맞을까.

 “이번에는 인텔리전스(정보)의 완전한 패배였다. 일본도 미국도 한국도 패배했다. 사망 발표 그 시간(19일 낮 12시)에 난 우연히 일본 정부의 최고위 핵심 인사와 점심약속이 있었다. 그가 2분 늦게 헐레벌떡 들어와 계속 휴대전화를 하더니 15분 만에 결국 총리관저로 갔다. 일본 내 ‘넘버 원’의 핵심 인사(측근)가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중국은 어느 정도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 김정일 조문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치열한데.

 “한국은 조문외교를 하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남북관계를 적어도 대화가 가능한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책임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된 만큼 리더십을 발휘해 줬으면 한다. 씨앗을 뿌리는 형태로라도 북한에 대해 ‘우리는 대화할 용의가 있다’ ‘경제개방, 경제개혁, 핵 문제를 놓고 이성적인 대화를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북한 내에 여러 그룹이 있지만 장성택(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같은 개방하려는 세력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향후 북한의 앞날을 결정할 최대 변수와 인물은.

 “중국과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다. 미국과 유럽의 성장모델은 끝났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의 시대라고 하는 이른바 신권위주의가 강하게 대두될 경우 북한과 중국 관계는 이데올로기적으로도 보다 강해질 것이다. ”

도쿄=김현기 특파원

◆후나바시는=지난해 말까지 아사히신문 주필을 맡았던 국제문제 전문가. 미국·중국 특파원을 지냈으며, 워싱턴 지국장 시절 ‘제2의 일본대사’로 불릴 정도의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지금도 포린어페어스가 기고를 청탁하는 아시아의 대표 지성이다. 게이오대 교수를 겸하면서 최근 싱크탱크 ‘일본재건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켜 이사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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