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교육청 ‘찾아가는 학부모 상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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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의 창(窓)’이라는 말이 있다.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게 된다는 말이다. 부모의 말과 행동, 자녀 교육 태도가 아이의 정서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부모 교육이나 자녀 교육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 13일 오전 10시 인천교육청이 주관하는 ‘찾아가는 학부모 상담’ 프로그램이 인천 청천초등학교에서 진행됐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인천 청천초에서 이현숙 상담사(맨 오른쪽)가 학부모들을 상대로 자녀 양육 방법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사진=김진원 기자]

“아이가 시험이 코앞인데 TV를 보고 있어요. 어머니들 이런 상황에서 보통 뭐라고 하시나요?”(이현숙 상담사)

“야, 셋 세기 전에 얼른 TV 꺼. 하나, 둘….” 박현정(37·인천 청천동)씨의 대답에 참가한 학부모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평소 자신이 아이에게 쓰는 말투와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상담사는 “방금 어머니의 말 속에는 핵심 메시지는 다 빠져 있다”며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해 보라”고 말했다. 박씨는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 적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TV만 보고 있으니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털어놨다.

이 상담사는 “어머니들이 아이에게 말할 때 앞뒤를 다 잘라먹고 ‘TV 꺼’라는 위협과 협박의 메시지만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전달하는 습관을 가져야 오해가 없어진다”고 알려줬다. 표현법에 대해서도 나의 감정을 충실히 전달하는 ‘나 전달법’을 사용하라고 짚어준 뒤,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다시 표현해 보게 했다. 박씨는 “도혁아, 내일이 시험인데 네가 이렇게 TV를 보고 있으니 엄마 마음이 답답해. 엄마는 도혁이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험 기간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싶거든. 지금은 공부하고 시험 끝난 뒤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재미있는 프로그램 실컷 보면 어떨까?”라고 고쳐 말했다.

성은희(39)씨는 적절한 체벌 수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김상분(40)씨는 “요즘 아이들은 자기 의견이 강하잖아요. 주변에서는 매를 들어서라도 따끔하게 가르치라고 하는데 제대로 된 방법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상담사는 “체벌을 하고 나면 아이의 반응은 어떠냐”고 물었다. 김씨는 “당장 앞에서는 말을 듣는데, 눈빛에는 반감이 서려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 상담사는 “아이들은 매를 맞으면 ‘난 엄마한테 충분히 보상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상담사는 “신체적인 처벌보다는 잘못에 대해 아이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충분히 설명하고 반성을 이끌어내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감정적인 처벌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김씨는 “아이가 사춘기에 반항을 심하게 하면 엄마가 눈물을 보이면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경미(33)씨는 “연기를 해서라도 눈물을 쏟으면 매보다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상담사는 “엄마는 자녀 앞에서 진실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가식적인 눈물이 반복되면 아이가 ‘엄마는 못 믿을 사람’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엄마를 무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 참여 가능

‘찾아가는 학부모 상담’은 인천시교육청이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이다. 월 4회 2시간씩 8시간에 걸쳐 학부모 자신과 가족, 자녀 이해하기, 갈등 해결하기 등의 내용을 다룬다. 10명 이상이 모여 자신의 고충을 공개적으로 털어놓는 집단 상담 방식이라 학부모끼리 공감하고 위로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한경미(37)씨는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딸아이와의 관계가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애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엄마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아이를 바꾸려고 하는 대신 엄마인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얘기했다.

김씨는 “아이보다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상담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내 성격, 내 양육 방식의 문제점 등을 알게 되니까, ‘우리 아이가 나의 이런 모습 때문에 힘들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나 스스로를 객관화시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시교육청은 최근까지 이뤄진 66차례의 상담에서 600여 명의 참가자가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이계영 시교육청 학부모정책 팀장은 “참가자 설문조사에서 전원이 ‘만족한다’고 말했고, 주위 학부모들에게도 적극 추천해 참가 신청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상담 프로그램은 인천뿐 아니라 전국 각 시·도 교육청에서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19차에 걸쳐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사춘기 자녀와 소통하기’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해 호평을 받았다. 경기도는 25개 지역에서 학부모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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