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드디스크는 검은색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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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디스크는 왜 검은 색일까? 빨간 색도 있고 흰색도 있는데 특별히 검은 색만 쓰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이다. 이번 호에서는 하드디스크가 왜 검은 색인지 알아보도록 한다.

요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용량은 끝을 모르는 듯 커지고 있다. 20GB와 30GB의 벽을 넘어 이제는 3.5-1(폭 3.5인치, 높이 1인치) 하드디스크 용량이 100GB를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여튼 두께가 1.6인치인 서버용 하드디스크도 가끔씩 볼 수 있지만 흔히 쓰는 하드디스크는 거의 모두 3,5-1 제품이다.

하드디스크 기술이 발달하면서 용량과 인터페이스도 계속 바뀌었지만 단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하드디스크의 색깔이다. 하드디스크를 자세히 보면 색깔이 은색 아니면 검은 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드디스크 아래쪽이 검은 색이고 위쪽 커버는 은색이다. 이렇게 똑같은 색을 쓰는 데에 의문을 품어본 이용자도 있을 테지만 거의 모든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며 넘어갈 것이다.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의 색이 검은 색이나 은색을 띄는 것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도대체 왜 검은 색과 은색을 써야만 할까?

먼지를 방지하기 위해 페인트를 칠한다

하드디스크에서 검은 색이 차지하는 부분을 바디(Body)라고 한다. 바디는 플래터와 스핀들 같은 부품을 감싼 하드디스크의 껍데기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하드디스크 바디는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다. 겉모양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안쪽에서 속 부품을 완전히 감싸는 구조로 하드디스크를 만든다.

바디가 복잡한 것은 열이 나는 것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플래터의 회전 속도가 올라간 요즘에는 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겉모양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안쪽에서 속 부품을 완전히 감싸는 구조로 하드디스크를 만든다. 이렇게 하면 플래터 근방의 공기 흐름을 한껏 줄일 수 있어 열이 나는 것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모양을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는 깎아내는 것이다. 말은 쉬워도 정작 깎아내려면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 모양이 복잡해질수록 깎아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복잡해진다. 이런 이유로 거의 모든 하드디스크의 바디는 주조라는 방법을 이용한다. 주조는 거푸집을 만들고 여기에 쇳물을 부어넣어서 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찍어낸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만들기는 쉽지만 몇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쇳물을 부어넣는 것이기 때문에 미세한 기포가 표면에 생길 수밖에 없다. 미세한 기포는 표면을 거칠게 만들기도 하지만 기포 안에 금속 가루를 담고 있어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가 동작할 때에 먼지를 뿌릴 수가 있다.

이런 먼지는 헤드가 플래터서 데이터를 읽어낼 때에 안정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요즘 나오는 GMR 헤드는 헤드와 플래터가 떨어진 폭이 매우 좁아서 미세한 먼지에도 플래터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따라서 기포 때문에 생긴 부분을 메우고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먼지를 덮어버리기 위해 그 위에 페인트를 칠한다.

왜 하필 검은색일까?

궁금한 점이 하나 더 남는다. 많은 페인트 가운데에서 하필이면 왜 검은 색일까? 그것은 디자이너들이 모형을 만들 때에 표면의 잡티나 잘못된 굴곡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은 색으로 칠하면 다른 색깔보다 기포 때문에 생긴 표면의 이상이나, 만들 때에 생기는 손상(긁힘 등)을 발견하기가 훨씬 쉽다.

아주 어두운 색이라면 다른 색을 써도 괜찮지만 하드디스크는 어차피 겉으로 드러나는 제품이 아닌데다 멋보다는 신뢰감을 주는 색깔이어야 한다는 것도 고려된 셈이다. 검은 색은 제품에 무게를 실어 주며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색이기 때문이다.

메달리스트 하드디스크(사진)처럼 바디가 은색인 제품도 있다. 하지만 이 사진을 잘 보면 바디 모양이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면 처리도 깎아서 만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모양이 단순하기 때문에 거푸집을 만들어서 찍어낸 뒤 페인트를 칠하는 것보다는 직접 깎아내는 것이 유리하다. 비싼 하드디스크에서는 이런 모양을 찾아볼 수 없다. 바디의 모양이 단순해지는 만큼 커버 모양이 복잡해지며, 주조로는 복잡한 커버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SCSI 방식의 중/고가형 하드디스크가 겉모습이 단순한데도 바디가 검은 색인 까닭은 발열을 한껏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페인트 값과 칠할 때에 들어가는 원가 부담이 생각보다 높기 때문에 몇몇 업체에서는 주조로 만들고도 칠을 안 하기도 하다. 이런 하드디스크는 내부 분진 탓에 데이터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데다 요즘 나오는 하드디스크는 GMR 헤드를 써서 먼지에 더욱 민감하기 때문에 주조 방식으로 만드는 바디는 거의 다 검은 색 페인트를 칠한다.

하드디스크 내부는 진공?

하드디스크 내부는 진공이 아니다. 하드디스크의 내부는 ''깨끗한 공기''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하드디스크 겉에는 숨구멍이 뚫려 있다. 요즘 하드디스크 헤드는 자기저항을 이용해 플래터와 간격을 유지하지만 이전에는 공기저항을 이용하기도 했다. 만약 진공 상태라면 헤드는 당장 플래터로 곤두박질할 것이다.

''하드디스크를 열어놓아도 동작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웬만한 하드디스크는 커버를 열어도 동작한다. 물론 커버를 여는 곳의 공기가 깨끗해야 한다. 하지만 이용자가 손수 커버를 열어서 문제가 생겼다면 애프터서비스는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한다.

커버는 왜 은색일까?

그러면 하드디스크의 위쪽 커버는 왜 모두 은색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주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판을 프레스로 눌러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먼지가 일어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위쪽 커버가 검은 색인 제품도 간혹 볼 수 있는데, 삼성전자나 후지쯔사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커버 모양이 다른 제품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주조를 이용해서 만들었고 위쪽 커버도 검은 색으로 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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