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부시 가문의 설욕전 준비는 끝났다

중앙일보

입력

미국 와이오밍州 캐스퍼의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는 취주악대의 연주 소리가 요란했지만 복도 저편 합창실에선 軍지휘소를 방불케하는 정적이 감돌았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조지 W. 부시(54)
텍사스 주지사가 러닝메이트 딕 체니(59)
와 함께 선거운동에 나선 첫날 분위기다. 부친인 조지 부시 前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체니가 방 뒤켠에서 조용히 외부와 통화하는 사이 부시 후보는 체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부시는 “그는 상대를 매우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준비가 되기 전에는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화가 끝난 뒤 체니가 나타나 엄숙한 표정으로 빌 클린턴-앨 고어 행정부는 “미국의 방향감각을 잃게 했다”며 자신은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워싱턴으로 복귀할 결의에 차 있다”고 말했다. 러닝메이트로서의 자신의 역할(부시에 따르면 ‘파트너십’)
을 묻자 체니는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시가 말을 가로 막으며 “아직 그 역할을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내곁에 있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이번주 필라델피아에서 나흘간(7월 31일∼8월 3일)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전당대회는 11월 7일 선거를 1백 일 앞두고 당에 활력을 불어넣고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개최하는 대규모 행사다. 그러나 부시의 선거운동과,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통치의 본질은 체니 모교인 그 고등학교 합창단실에서 드러났다. 바로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 임무의 총사령관은 부시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기업 중역들이 팀으로 공직 진출을 결정하는 이사회실과 흡사했다.

부시는 워싱턴에 ‘온정적인 보수파’를 끌어들이고, 백악관에 ‘도덕’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그는 부친의 최측근중 한 명을 러닝메이트로 택함으로써 또다른 면을 부각시켰다. 아버지 조지 부시 前 대통령의 쓰라린 재선 실패에 대한 복수의 욕구를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부시 일가는 1992년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을 제치고 승리한 빌 클린턴과 앨 고어를 ‘권력 찬탈 세력’으로 간주했다. 이제 그의 아들이 다시 출마해 자신을 최고경영자(CEO)
로, 신임이 두터운 체니(걸프戰의 ‘사막폭풍작전’ 책임자)
를 최고운영책임자(COO)
로 내세우며 민주당 후보인 고어 부통령에게 패배를 안기려 하는 것이다. 미국의 21세기판 ‘정권 복고’ 운동인 셈이다.

유권자(특히 남성)
는 그 아이디어에 호감을 갖는 것 같다. 최근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부시는 고어에게 7%포인트의 리드(47% 對 40%)
를 지켰다(한 달 전에 비해 6%포인트 상승)
. 부시는 후보자 자질에서도 고어에 대한 우세 격차를 벌렸다. 응답자의 67%가 부시에게 ‘강한 지도자 자질’을 인정한 반면 고어는 52%에 그쳤다. 또 후보자가 정직하고 도덕적이냐는 질문에 부시의 경우 ‘그렇다’가 64%, ‘그렇지 않다’가 24%였지만 고어에 대해선 각각 56%와 33%였다. 후보자가 지적이고 박식하냐는 질문에서도 부시는 고어와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부시는 73% 對 19%, 고어는 77% 對 17%)
. 체니의 발탁은 무소속 유권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47% 對 31%로 부시를 지지)
. 성별로 보면 여성 유권자의 지지는 두 후보가 거의 같았지만 남성 유권자 중에선 부시가 큰 우세를 보였다(51% 對 34%)
.

체니 발탁은 신중을 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면에선 대담한 결정이다. 우선 부시는 그 과정에서 통상적인 고려사항을 무시했다(체니의 출신州 와이오밍은 배당된 선거인단 수가 극히 적고, 체니 자신도 공식석상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해 유권자들에게 별 매력을 주지 못한다)
. 위험에 대한 직감이 탁월한 정치인인 부시는 유권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바로 그가 당선될 경우 적어도 초기에는 국가를 통치하기엔 능력이 모자랄지 모른다는 우려다. 부시가 케네디 前 대통령처럼 외로이 위에서 모든 일을 관장하는 스타일 대신 흡사 기업운영을 닮은 통치 스타일을 들고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부시는 “대통령직의 요체는 팀워크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같은 부시의 전략을 핵심 사안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기 위한 손쉬운 변명으로, 또 ‘무임승차’ 후보에 대한 자신들의 불가피한 인신공격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시도로 간주한다. 고어의 언론담당 보좌관 밥 슈럼은 “부시가 현실을 무시한 그런 태도로 선거운동을 계속 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재빨리 부시-체니 티켓에 야유를 보냈다. 그들은 그 티켓으로 인해 고어가 성공적인 현직 부통령으로(경제 치적 강조)
, 또 과거로의 회귀에 맞서는 변화의 선도자로 인식될 기회를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측은 부시가 체니 발탁으로 기업 이사진 같은 모습을 하게 됐을 뿐 아니라 거기에 수반될 수 있는 사회적 고립까지 자초했다는 점에 더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5년 간 텍사스 석유업계의 중역으로 일한 체니의 가세로 공화당은 정·부통령 후보 모두가 대형 석유업계 출신으로 채워지게 됐다. 민주당은 그같은 티켓이 유가인상으로 큰 타격을 받은 州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기를 바란다. 더 일반적으로 민주당측은 공화당의 이번 티켓을 부유한 상류층 백인 남성팀으로 간주하고 상호간의 심리전에서 전형적인 ‘악한’으로 몰아붙일 생각이다.

뉴스위크의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측의 그같은 공격은 근거가 확실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권자들은 ‘부시-체니’ 행정부가 ‘보수파 집단에 좌우될 것인???대해 ‘그렇다’ 40% 對 ‘그렇지 않다’ 40%로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부시-체니 후보가 ‘대규모 석유업계의 영향에 지나치게 좌우될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35%에 불과했다. 사실 부시 진영은 고어가 특정 유권자들의 지지를 노리고 그처럼 사소하고 지엽적인 공격에 초점을 맞춰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부시의 한 고위 측근은 “그들이 저급한 공격으로 나오면 나올수록 클린턴이 끌어넣은 수렁에서 고어를 벗어나게 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고 말했다.

체니는 유능한 인물로 평가받았지만 공화당 일각을 포함한 비판자들은 발탁 배경에 의혹을 제기했다. 부시는 올 봄 체니에게 러닝메이트 후보들에 대한 심사 책임을 맡겼다. 그러나 결국 부시는 그가 적임자란 판단을 내렸다. 갑자기 부시가 아버지로부터 막판 도움까지 받아가며 서둘러 형식적인 부통령 후보 선정 절차를 밟은 것이다(부친은 오래 전부터 체니를 천거했다)
. 급기야 민주당은 부시 前 대통령의 영향력에 의혹을 제기했고, 일부 공화당 인사들도 이미 짜여진 각본이 아니냐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부시는 자신이 처음 체니를 눈여겨 본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고 말했다. 체니는 부시를 위해 이슈들에 대한 브리핑을 해주러 텍사스州 오스틴에 갔다. 그는 다른 브리핑 인사들도 모르게 하루 일찍 그곳에 도착했으며 저녁 시간도 부시의 주지사 관저에서 함께 보내며 부시에게 많은 조언을 했다. 그 과정에서 부시는 아버지가 신중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운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었다.

부시는 당시 주위 사람들에게 딕 체니에 대해 겸손하면서도 남성다우며 아버지를 도와 아버지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을 구가하게 했고, 아버지의 심복으로 영리하고 묵직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부 특유의 유머감각을 가진 인물이라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또 체니는 심장수술 후에도 활기찬 삶을 살았다. 부시의 한 고위 보좌관은 “부시는 이미 그때 그를 경탄해마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시는 3월 7일 공화당 후보지명을 사실상 획득하자 수시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여러 러닝메이트 후보에 대해 문의했다. 부시는 “주로 ‘훌륭한 판단력을 갖춘 인물인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인물인지’를 여쭸다”고 말했다. 체니의 경우엔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쉽게’ 나왔다. 부시 前 대통령은 이미 1991년 걸프전 때 미군의 생명을 체니에게 맡긴 바 있기 때문이다.

부시는 올 봄 체니에게 러닝메이트가 돼줄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체니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 대신 체니는 부시의 러닝메이트 후보를 선정하는 심사 책임을 맡기로 했다. 부시 진영의 일부 인사들은 그런 조치가 콜린 파월을 러닝메이트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다(체니는 국방장관 시절 파월을 합참의장으로 임명했다)
. 그러나 파월은 거절했다. 초여름까지 부시는 다른 사람들을 저울질했다. 언론에서 치켜세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고려대상 리스트에 들지 않았다(그러나 매케인은 8월 15일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되는 민주당 전당대회 이전에 선거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음주 부시 유세를 지원할 계획이다)
.

부시는 7월 3일 텍사스州 크로퍼드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 체니에게 부통령 후보를 맡을 의향이 있는지 재차 타진했다. 체니는 자신이 러닝메이트 고려대상에 오르는 데 동의했다. 그러자 부시는 심사 책임자를 누가 심사하느냐는 문제에 부닥쳤다. 해결책은 외부의 도움을 받아 부시 자신이 한다는 것이었다. 체니에 대한 자료는 많았다. 체니는 공직에 있는 동안 美 연방수사국(FBI)
의 ‘철저한’ 신원조회를 세 차례나 받았고, 국방장관 임명 인준과 관련한 인사청문회의 방대한 보고서가 있을 뿐 아니라 국방장관으로서 신원 문제에 관한 한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부시는 선거운동 책임자인 조 올바우에게 체니의 하원의원 시절 의회표결 기록을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주류에서 크게 벗어난 표결행사가 몇 건 있었음이 밝혀졌지만 부시나 올바우가 문제라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그 문제들은 체니가 먼저 거론했다. 그중 하나는 건강문제였다.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체니가 ‘심장이 좋지 않다’고 말하기에 나는 ‘그래?’라고 되물었다. 나도 그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그의 의료기록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다.” 체니는 의료 기록을 부시에게 넘겨준 뒤 주치의에게 건강검진을 받았다. 주치의는 그의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통보했다. 부시는 정보가 좀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제 2의 견해가 필요했다. 어느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 덴턴 쿨리를 잘 아시지요. 그에게 체니의 의료기록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집에 도착하자 쿨리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쿨리(79세의 고령임에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장 전문의로 알려져 있다)
는 체니의 의료기록을 검토하고는 다시 부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시는 “쿨리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알려주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문제는 체니의 작은 딸 메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었다.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그런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난 ‘당신이 딸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당신이 딸을 매우 사랑한다는 사실을 존경한다’고 말해주었다.” 체니는 합창실에서 부시가 기자들에게 말하는 동안 곁에 서 있었다. 그는 딸의 동성애 문제가 거론되자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로 “난 딸들을 매우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부통령에 출마하는 사람은 나다. 딸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딸 아이의 사생활”이라고 잘라 말했다.

부시도 그의 말에 동조하면서 “체니가 그 문제를 제기했고 그에 대해 나는 ‘서로 몹시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말해주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체니 부부는 자녀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다. 바로 그 사실이 인간으로서의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모든 문제에 대한 심사가 끝나자 부시는 7월 25일 화요일 체니에게 부통령후보 지명을 공식 제안했다. 체니도 기꺼이 수락했다. 체니는 마지막 결정적인 며칠 동안에 부시 前 대통령과 연락했다. 체니는 “부시 前 대통령과는 평소에도 정기적으로 대화한다. 러닝메이트 문제는 그의 아들과 나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번에 연락했을 때는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틀 뒤 그들은 아칸소州 스프링데일에서 유세를 가졌다. 워싱턴에 위엄과 정직성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다짐한 체니는 COO 같은 내조자의 차분한 음색으로 연설을 했다. 반대로 CEO인 부시는 원기넘치는 응원단장 역할을 맡았다. 그는 “내가 체니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옳은지는 오는 11월 7일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그들은 이름뿐이 아니라 실질적 파트너로서도 서로 만족해 하고 있다.(Howard Finema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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