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호 임대주택 정책 `딜레마`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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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재건축 시장에 혼란을 주는 두 가지 엇갈리는 결정이 있었다. 강남 개포지구의 단지별 정비구역 지정이 보류된 것과 송파구 가락시영 아파트의 종상향 결정이 그것이다.

지난달 개포지구 정비구역 지정 심의가 미뤄진 이후 주택업계는 박 시장이 평소 지론대로 재건축 재개발 사업에 대한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쏟아냈다. 서울 시내에서 재건축 사업은 당분간 속도를 내기 어려운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힘을 얻으며 재건축 아파트 시세는 빠르게 추락했다.

그런데 이달 7일 서울시는 느닷없이 가락시영 아파트의 용적률을 높일 수 있도록 3종 종상향을 결정했다. 재건축 아파트의 사업성을 높여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울시 김효수 주택본부장은 “이번 결정이 (종상향을 요구하는) 강동구 둔촌지구 등 대규모 단지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이 결정의 파급효과는 컸다. 다른 재건축 대상 아파트 역시 종상향으로 용적률을 높일 수 있고 사업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시세가 뛰기 시작했다.

종상향 결정이후 7일부터 15일까지 가락시영 아파트는 10건이나 거래됐다. 가락시영1차 57㎡형은 일주일 사이 1000만원 오른 6억2250만~6억4000만원, 가락시영2차 34㎡형은 1500만원 오른 4억3750만~4억5500만원으로 시세가 뛰었다.

종상향 이후 들썩이는 강남 재건축

중앙일보조인스랜드에 따르면 종상향 결정과 12.7대책 이후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 일제히 호가가 상승하면서 송파구(0.12%), 강남구(0.11%), 강동구(0.01%) 등의 시세가 올랐다.

재건축 시장은 아직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재건축 시장의 속도조절을 강조해 온 박 시장이 재건축 종상향을 허용해 시장을 다시 들썩이게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있었던 희망 서울 정책토론회는 아수라장이었다. 서울시의 무리한 뉴타운 지정으로 집을 빼앗겼다는 세입자 등의 항의로 토론회가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서울시가 발표한 가락시영 아파트 종상향 허용 계획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이번 결정이 부동산 폭등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이런 시각에 일부 동의했다. 그는 “용적률을 20% 상향 조정하고 장기전세주택을 당초보다 959가구 더 확보한 것에 대해 의미를 두었다”며 “하지만 부동산 급등의 원인이될 수 있다는 비판적 여론을 뒤늦게 확인했고, 사전에 시민단체와 전문가의 자문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을 시인 한다”고 사과했다.

박 시장은 “가락시영의 종상향이 일반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역 여건과 환경에 맞게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마아파트나 잠실5단지가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을 요구하는 민원을 의식한 것이다.

임대주택 8만가구 공급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박시장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분석한다. 서울시에서는 8만가구의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공공 임대주택을 지을 만한 시유지가 크게 부족하다. 시내 6만2400필지 1억723만4000㎡의 시유지 가운데 98% 이상이 공공청사나 도로·하천 등이어서 활용할 수 있는 땅은 거의 없다.

따라서 기존 재건축을 활용하는 방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소속인 서울시의회 강감찬 건설위원장은 “서울시에는 소형 임대주택을 지을 땅이 없다”며 “기존 아파트 단지를 활용한 재건축 종상향이나 고밀도 재건축 등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임대아파트 공급 목적으로 재건축 아파트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재건축 재개발 아파트 값은 다시 들썩일 가능성이 크다. 시민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경실련은 “재건축 재개발 시장에서 꺼져가는 거품과 투기가 종상향 허용으로 인해 다지 조장될 우려가 높다”며 “‘종상향’은 임대주택 8만호 공약을 빌미로 특혜 개발 허용하겠다는 장사논리”라고 강력 비판했다.

주택업계 한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이 재건축 재개발 정책을 앞으로 어떻게 펼칠지에 따라 시장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며 “어떻게든 진행하던 사업은 추진하는 게 옳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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