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이 받아야 할 몸값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9호 31면

최근 500만 관객을 돌파한 한 영화의 주연배우 A. 그가 받은 출연료가 6억원대라는 소문이 개봉을 앞두고 퍼졌다. 게다가 손익분기점을 넘으면 관객 수에 따라 러닝개런티를 받는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충무로에선 설전이 벌어졌다. “순제작비의 20%에 육박하는 액수를 요구하는 건 배우의 지나친 욕심”이란 시각이 한편이다.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투자를 못 받다가 A가 출연의사를 밝히면서 투자가 결정됐으니, 고액도 아깝지 않다”는 주장이다. 해마다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한국영화계의 현실을 봤을 땐 전자가 일리 있게 들린다. 후자도 그럴 듯하다. 만들어지지 못했을 영화를 빛을 보게 한 데다 완성도에 결정적 기여를 한 배우의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그가 출연한 영화는 크게 성공했다.

On Sunday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적정한 몸값’을 정하는 건 이렇게 어려운 문제다. 프로의 세계에서 몸값은 어떻게 매겨지며, 그것이 적절한지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최근 ‘정명훈 고액연봉 논란’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논란은 16일 서울시가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과 재계약을 하기로 함으로써 일단락됐다. 개런티는 삭감됐다. 도마에 올랐던 판공비와 유럽 주재 보좌역 인건비, 가족들이 쓴 비즈니스 항공권 등이 내년부터 없어진다. ‘찾아가는 음악회’ 지휘료도 없어진다. 그가 회당 지휘료의 반액을 받았다는 이유로 “자선행사도 돈 받고 했다”는 일각의 비난을 샀던 항목이다. 연봉을 줄이기 위해 연주 횟수도 줄어들 전망이다. 서울시와 서울시향이 더 이상의 잡음을 원치 않아 ‘여론재판’에 손을 든 형국이다.

정명훈 본인이 동의했다지만 솔직히 유감스럽다. ‘세금을 허투루 써선 안 된다’는 주장은 100번 맞다. 하지만 프로의 몸값을 여론으로 재단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 첫째는 시장의 논리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6년 전 서울시향은 ‘정명훈급’ 지휘자가 절실했다. 불행히도 정명훈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레벨에서 서울시향이 데려올 수 있는 카드는 별로 없었다. 최고 연봉 20억원(2010년 기준)은 구매자(서울시향)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재화(정명훈)를 사기 위한 비용이었단 얘기다. 정명훈이 필요 없다면 치를 이유가 없다. 하지만 별 대안이 없다면 설령 시세(이른바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받는 연봉)를 다소 웃돈다 해도 내야 하는 돈이기도 하다. 그게 거래의 이치다.

게다가 정명훈이 유료관객 수 증가, 수익 증대 등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서울시향은 6년 만에 ‘별 볼일 없는 오케스트라’에서 ‘들어줄 만한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한 나라의 수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가 내적·외적 성장을 이루는 가운데 확립한 문화적 가치는 서울시의회 감사자료에는 나오지 않지만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다. 다시 배우 A의 얘기로 돌아간다. 그가 이번 영화에서 연기도 죽 쑤고 흥행도 시들했다면 앞으로도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제작자나 투자자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프로의 몸값은 여론이나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 입증한 가치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