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제몫한 대기만성형 이광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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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속담은 두산의 노장 투수 이광우(35)에게 딱 어울린다.

어느덧 프로 12년차에 접어든 이광우는 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와 9회 투런 홈런을 허용하긴 했지만 9이닝동안 4안타, 1볼넷, 2실점(비자책)으로 완투, 팀의 7-2 승리를 이끌었다.

전날 주루사 등 어이없는 실책으로 다 이긴 경기를 놓치며 14연승 중이던 SK에 1패를 당한 두산은 최근 4연패를 기록하며 3위 삼성에 1경기 반 차로 추격당해 2위자리마저 위태로워 보였다.

이날도 두산은 초반 매회 주자를 내보내고서도 후속타 불발과 성의없는 주루 플레이로 대량득점 기회를 놓쳐 불안함을 보였다.

그러나 이광우는 침착하고 노련한 투구로 동료들을 안정시키며 팀의 연패를 끊어 두산의 확실한 에이스로 거듭났다.

이광우는 이날 최고 시속이 140km를 간신히 넘어 위력적인 구위는 아니었지만 안정된 제구력과 타자의 허를 찌르는 볼배합을 십분 활용하며 SK 타자들을 제압했다.

특히 4회 2사 1.2루의 위기상황에서 승부 근성이 강한 최태원을 3루수 땅볼로 유도한 대목은 이광우의 위기관리 능력을 말해준다.

이날 완투승으로 8승 2패를 기록한 이광우는 다승에서는 전반기 에이스 역할을 하던 파머(9승)에 1승 뒤지지만 방어율과 승률에서는 3.45와 8할을 기록, 파머의 4.51, 6할을 훨씬 앞선다.

또 17경기에 등판, 114⅔이닝을 던지며 등판 경기수와 투구이닝에서도 파머의 16경기, 105⅔이닝을 앞질러 기록면에서도 명실상부한 에이스 투수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게다가 파머가 지난 5월20일 잠실 LG전에서 7연승을 기록한 후 현재까지 2승5패로 하락세인데 비해 이광우는 지난 6월20일 LG전 이후 6연승을 거둬 선발투수난을 겪는 두산의 김인식 감독은 이광우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

지난 89년 해태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 92년 OB(현 두산)로 이적한 이광우는 아직까지 한번도 두자리 승수를 올리지 못했다.

지난 시즌 9승을 올린 것이 최다승이지만 후반기에 막 접어든 정규리그에서 벌써 8승째를 거둔 이광우는 올해만큼은 10승대 투수 대열에 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광우는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해내 기쁘다"면서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선발 투수로서 팀 우승에 보탬이 되는 것이 최대 목표"라고 말했다.(서울=연합뉴스) 이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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