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천국의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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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은 돼도 만화는 안된단 말인가!" 몇년 전 만화가 이현세씨의 구속을 접하고 만화계 인사들이 자조적으로 내뱉은 한탄이었다.

아직까지 만화를 저급한 장르로 보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저께 이런 그들의 우려가 드디어 적중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 〈거짓말〉 의 음란성 여부에 대한 무혐의 판정의 기억이 생생한데 불과 3주도 채 되지 않아 만화 〈천국의 신화〉 가 법원에서 음란물 판정을 받고 이현세씨는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짓말〉 이 '설사 음란성이 있다 하더라도 고의성이 없다' 는 이유로 관대한 처분을 받은 반면, 〈천국의 신화〉 는 청소년판을 만들면서 문제 장면을 수정하는 등 노력을 다했음에도 유죄 판결을 벗어나지 못했다.

과연 사법당국은 만화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

영화 〈거짓말〉 은 성인용이었지만 만화 〈천국의 신화〉 는 청소년용이었다는 점 말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성인과 청소년을 다르게 대접한다.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미성숙한 존재이고 사리분별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존재이므로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음란물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는 것뿐 아니라 청소년의 음주와 흡연을 제한하고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 모두 이런 보호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대신 청소년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대개 성인에 비해 관대한 처분을 받는다.

청소년이 과연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없지 않다. 또 음란물이 청소년에게 실제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상반되는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청소년을 몇살까지로 보느냐를 둘러싸고 자주 논란이 빚어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청소년의 범위도 모호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청소년이 근대 이후에 생긴 사회적 범주라는 점도 이런 논란을 부추긴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에 대한 보호 주장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인간을 두고서는 실험을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음란물이 실제로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신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접근을 금지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도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에 청소년이라는 사회적 범주의 자의성을 주장하는 논리는 설득력을 잃고 만다.

청소년이 들을 수 있는 시간에 음란한 농담을 방송한 라디오 방송국에 유죄를 선고한 미국 법원의 1978년 판례나, 텔레비전에 음란물에 대한 접근 차단 장치를 의무화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노력은 1%의 위험도 감수하지 않겠다는 이런 정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쟁점은 영화와 만화가 아니라 성인과 청소년이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에게 보여 주지 말아야 할 음란물이란 어떤 것일까? 그동안 수차례 비슷한 논란이 반복된 바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음란물의 판정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천국의 신화〉 에 대한 이번 판결에서 재판관은 "법적인 판단 이전에 부모의 입장에서 만화를 봤을 때 자식들에게 보여줘도 괜찮은 것인가를 판단,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는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이는 외설물의 판정 기준과 관련해 유명한 73년 미국 대법원의 판례에서 '보통 사람들의 판단' 을 기준으로 삼은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우리 법정에서는 음란물에 대한 판정을 할 때 법관이나 검사의 개인적 판단에 여전히 많은 부분을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의성은 '신체 특정부위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막으려는 영화 촬영 기법' 등을 이유로 〈거짓말〉 이 음란물이 아니라고 판정한 검사의 판단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결국 음란성 여부를 판단할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정립되지 않는 한 사법당국의 판결을 둘러싸고 자의적이며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관이나 검사가 더 이상 한 부모의 개인적 입장에 얽매이지 않을 날은 과연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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