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콰이강의 다리〉는 몇가지 이유로 인해 강력한 상징성을 가진다.
첫번째로 영화의 모든 내용들이 실화를 근거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 중에서도 유독 이 다리(실제로 콰이강의 다리를 보고 온 사람들은 그 규모의 아담함으로 적잖은 실망을 한다고)가 상징적인 위치에 자리잡을 수 있는 이유는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굳건한 전우애와 영국군인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조형물이라는 점이다.
두번째로 우리나라로 치면 인간문화재쯤 되는 최고의 위치에 올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알렉기네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조지루카스의 제국〈스타워즈〉에서 젊은 스카이워크를 양성하는 유일한 제다이로 남아있던 오이완케노비의 품위를 상기시킨다면 언뜻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속에서도 신의와 긍지를 강조하는, 그러면서도 군인 특유의 박력을 잃지 않았던 명배우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그의 명연기로 인해, 또한 전쟁의 비극이후에 숨겨진 살아 숨쉬는 인간성으로 인해 영화는 품격을 잃지않고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 기념비적인 작업에는 음악도 한몫 거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의 음악으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말콤아놀드의 음악은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업들과 차별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영화의 주시점은 전쟁의 참혹함보다는 그속에 담겨진 인간들의 모습을 관조하는 입장이다.
말콤아놀드는 이 시점을 반영하는 곡으로 흔히〈콰이강의 마치〉라고 불리는 테마음악을 제시했는데, 이곡은〈사상최대의 작전〉〈대탈주〉등과 함께 전쟁영화음악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콰이강근처의 주둔지로 수송되어 온 영국군 포로들이 알렉기네스의 지휘아래 이곡을 휘파람으로 부르면서 입장하는데 곡의 경쾌함과 전쟁이라는 두가지 요소들이 묘한 뉘앙스를 준다.
영화의 중반부에 일본군장교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알렉기네스가 감방에서 나올 때 또다시 변주되어 흘러 나오며, 마지막으로 영화의 말미에 다리가 폭파되고 난 후에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또 다시 변주되는데 같은 곡이 변주를 통해 이렇게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실로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