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빅터 차의 세상읽기

FTA 비준과 한국의 실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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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지난달 12일 미국 의회에 이어 22일 한국 국회에서도 통과됐다. 아울러 한·미 FTA 이행을 위한 14개 법안도 통과됐다. 이로써 한·미 FTA는 양국에서 비준을 모두 완료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당시 미 의회가 한·미 FTA 이행 법안을 상·하원 본회의에서 표결처리한 지 41일 만이고, 2007년 4 월 2일 협상타결이 이뤄진 지 4년 7개월 만의 일이다. 이제 한·미 FTA는 내년 1월 1일 발효될 수 있게 됐다.  

 한·미 FTA 비준은 미국을 기쁘게 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특히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ISD)의 재협상을 보류하는 것과도 무관하다. 협정 비준을 당장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야당과 여당 모두에- 최근의 경제·정치 상황과 관련한 한국 사회의 경기 침체와 대중적 분노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강일구]

 그 이유를 알아보자. 한국 독자들이 잘 알고 있듯이 야당인 민주당은 정부에 대항해 한·미 FTA 비준에 반대해 왔고, 여야 협상은 교착상태를 면치 못했다. 민주당은 국회 비준에 앞서 ISD 재협상을 확약하는 미국 정부의 문서 합의문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가 비준해 주면 그 뒤 수개월 안에 미국 정부와 ISD 재협상에 들어가는 방안을 제안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론 커크 대표도 한·미 FTA와 관련한 협상을 돕기 위해 협정 발효 이후 ISD를 포함해 FTA 이행과 관련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야 협상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서 한나라당은 의회 다수당임을 활용해 협정 비준안을 국회에서 단독 처리해야 할 상황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이 FTA 통과를 놓고 물리적으로 다투는 광경이 CNN을 통해 방영되면서 국제사회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후의 선택으로서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왜냐하면 한·미 FTA 비준안의 국회 통과는 한국이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 탈출하는 데 필요한 핵심 과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것처럼 한국인들은 정치에 분노를 느끼고 있으며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절망하고 있다. 저성장·고물가·비싼 등록금·고실업에 대중은 좌절하고 있다. 한국의 공식 실업률은 3.2% 정도지만(두 자릿수에 이르는 미국의 실업률과 비교하면 매우 낮기는 하다) 청년실업률은 20%에 육박한다.  

 2주 전 워싱턴에서 열렸던 미 국무부 콘퍼런스에서 만났던 조지워싱턴대의 박윤식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15~24세 연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5%로 OECD 평균(48.5%)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더구나 현재 비정규직이 800만 명에 이르고 있어 용케 취직이 된 사람 사이에서도 불확실성과 불안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런 수치들을 들어 이명박 정권이 경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재 한국에선 어떤 정부가 집권해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 더욱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제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에선 과거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전통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는 데다, 이런 일자리는 이제는 풍족해진 한국인에겐 더 이상 매력을 주지도 못한다.

 박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에선 앞으로 제조업 분야가 아닌 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가 늘어나게 된다. 이를 위해선 금융·재무·보험·의료· 정보통신, 그리고 다른 고부가 산업 분야에서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런 분야에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 고학력·고실업의 한국 젊은이들에게 고연봉·고급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영리병원을 비롯한 의료산업을 키우려다가 실패한 것을 보면 한국 사회 일반에서는 물론, 관료사회에서도 이에 대한 완강한 저항이 있다.  

 이제 초점은 서비스 분야에서 규제를 완화해 한국 경제를 이러한 고부가 분야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냐다. 그 해답은 한·미 FTA를 발효하는 일이다. 한·미 FTA는 한국 내수시장을 개방시켜 미국과 유럽의 서비스 분야와 국제적인 경쟁을 하게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법률 서비스부터 익일 배달 서비스까지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선택권을 확보하면서 이익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은 물론 한국에 있는 외국 기업 모두에서 더 많은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한·미 FTA는 일개 무역협정을 넘어 한·미 동맹이라는 나무에 거는 장식물을 뛰어넘는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이는 한국이 앞으로 경쟁력 있는 경제와 활기차고 자신만만한 사회를 이루는 데 필수적이다. 비록 모양이 예쁘지 않더라도 비준안을 통과시켜야 했던 이유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필자는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이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위원이다. 2004~2007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과 6자회담 미 차석대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