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팀 최종예선 갈지 걱정, 최종예선 가도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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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왼쪽부터 조광래, 본프레레, 코엘류.

지난해 7월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조광래(57) 감독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8강이 목표”라고 했다. “남은 축구 인생을 걸겠다”는 비장함까지 보였다. 16개월이 흐른 지금, 한국 축구는 월드컵 8강은커녕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한국은 15일(한국시간) 레바논과의 아시아 3차 예선 B조 5차전 원정 경기에서 1-2로 졌다. 레바논과 같이 3승1무1패(승점 10)를 기록했지만 골득실(한국 +8, 레바논 -2)에서 앞서 조 1위는 지켰다. 하지만 내년 2월 29일 홈에서 열리는 쿠웨이트(2승2무1패·승점 8)와의 경기에서 지고 레바논이 아랍에미리트(UAE)와 비기거나 이기면 한국은 최종예선에도 못 나간다. 한국이 지고 레바논도 UAE에 지면 최종예선에 나간다. 2002년의 기억이 생생한 축구팬들에게 이 절박한 현실을 지켜보는 심정은 고통스러울 따름이다.

 ◆“외국인 지도자라면 이미 잘렸을 경기력”=조 감독이 부임한 뒤 한국 축구대표팀은 12승6무3패를 기록했다. 승률은 나쁘지 않다. 문제는 내용이다. 경기력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한국은 지난 1월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일본과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로 졌다.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빠른 템포의 공격축구는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6월에 열린 가나(2-1 한국 승)와의 경기를 끝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8월 10일 한국은 삿포로에서 일본에 농락당하며 0-3으로 졌다. 내용과 결과 모두 굴욕적이었다. 9월 2일 레바논에 6-0으로 이겨 분위기를 반전하는 듯했지만 나흘 뒤 쿠웨이트와 졸전 끝에 1-1로 비기며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15일 열린 레바논과의 경기는 최악이었다. 이 경기력이라면 일본·이란·호주·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제치고 본선 티켓을 따내기 어려워 보일 정도로 졸전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설위원은 “8월 일본에 당한 패배도 그렇고 외국인 지도자라면 벌써 잘렸을(해임됐을) 경기력”이라고 했다. 2003년 2월 취임한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 감독은 베트남(0-1패)과 오만(1-3패)에 진 다음 흔들리다가 몰디브(0-0무)와 비긴 뒤 사임했다. 쿠엘류의 뒤를 이은 조 본프레레(네덜란드)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최종예선에서 사우디에,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에 지는 등 신뢰를 얻지 못해 경질됐다.

 ◆“시험대에 오른 조광래 리더십”=계속된 졸전으로 인해 조광래 감독의 지지도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의 리더십도 의심받고 있다. 특히 상황 변화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 감독은 레바논에 진 다음 “잔디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푸념했다. 하지만 경기장의 잔디가 고르지 않다는 정보는 오래전에 입수했다. 좋지 못한 잔디 상태를 감안해 적절히 선수를 기용하고 전술을 수립해 이겨내는 일이 감독의 임무다.

 조 감독의 선수 선발과 기용 방식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전문가가 적잖다. 레바논과의 경기에서는 그동안 한번도 호흡을 맞춰 보지 않은 서정진(전북)·이근호(감바 오사카)·이승기(광주)를 공격 최전방에 세웠다. 이는 박주영(아스널)·지동원(선덜랜드)·기성용(셀틱)·이청용(볼턴)·구자철(볼프스부르크) 등 ‘해외파 올인’ 정책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해외파가 부상과 부진,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자 축구다운 축구를 하지 못했다. 상대 수비수가 많아 상대 진영에 공간이 없는데 “공간 침투 능력이 뛰어난 손흥민을 활용하겠다”고 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패스 중심의 빠른 경기 운영은 세계 축구의 흐름과 일치한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바르셀로나 선수들만큼 패스가 정확하고 빠르지 않다. 더구나 조광래식 축구에는 변화가 없다. 어느 팀을 상대할 때든 같은 축구를 한다. 아주 높은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지 못한다면 연구되고 읽혀서 분쇄당할 수밖에 없다. 조 감독은 자존심이 강한 축구인이다. 그러나 축구팬들에게는 조 감독의 축구 철학보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훨씬 더 중요하다.

  김종력 기자

● 재임 기간 : 2010년 7월 3일~현재 ● 성적 : 12승6무3패 ● 충격패 : 레바논 1-2패, 일본 0-3패

●2004년 6월 24일~2005년 8월 23일 ●11승8무6패 ●일본 0-1패, 사우디아라비아 0-1패

●2003년 2월 3일~2004년 4월 19일
●9승3무6패 ●베트남 0-1패, 오만 1-3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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