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T-2000 기술표준, 비동기쪽으로 급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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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외국기업과의 로열티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뒤로 미뤄졌던 IMT-2000(차세대 이동통신) 기술표준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IMT-2000의 원천기술 보유업체인 퀄컴(동기식), 에릭슨(비동기식) 등과 로열티협상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표준 선정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IMT-2000 기술표준은 미국 퀄컴이 독점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동기식(북미식)과 스웨덴 에릭슨을 중심으로 수십개 업체들이 필수기술 특허를 갖고 있는 비동기식(유럽식) 등 2가지로 구분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사용중인 2세대 이동전화에서는 퀄컴의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표준방식을 채택, 엄청난 로열티를 지불해왔으나 3세대인 IMT-2000에서는 세계시장 규모 등을 고려해 대부분 업체들이 비동기식을 선호하고 있다.

비동기 표준방식은 전세계 이동통신 시장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동기식의 뿌리인 CDMA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한국등 극히 일부국가로 제한되어 있다.

정통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즉 향후 세계 통신시장의 판도변화를 볼때 시장규모나 기술발전 추세 측면에서 기존 동기식보다는 비동기식이 유리하지만 비동기식을 채택하자니 그동안 국내업체들이 막대한 투자를 통해 축적한 동기식 기술이 사장될 우려가 높다.

세계 최대의 이동통신 시장인 중국의 CDMA 채택 가능성도 정통부의 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한 미국이 동기식 채택을 요구하며 통상압력을 가해올 가능성도무시할 수 없는 고려대상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업계는 기술표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채 이해득실을 따지며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통부= 정통부는 그동안 IMT-2000사업자 선정기준의 핵심쟁점인 △사업자 수△사업자 선정방식 △기술표준 가운데 기술표준 만큼은 최대한 뒤로 미루겠다는 방침을 견지해왔다. 동기식의 퀄컴과 비동기식인 에릭슨 진영과의 로열티협상이 진행중인 만큼 특정 기술표준으로 결정되면 로열티협상에서 불리해진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 정통부의 이같은 전략은 에릭슨 등으로부터 로열티 수준을 최저로 낮추겠다는 입장을 끌어내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퀄컴은 동기식 기술표준에 관한 독점적 지위를 이용, 현행 CDMA 로열티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과 함께 한국업체들이 비동기식을 채택할 경우 더 많은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것이라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지난 26일 안병엽(安炳燁)정통부장관은 국회 상임위 발언을 통해 "단일표준 채택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면서 "모든 사업자가 비동기식을 희망하더라도 정부가 개입해 사업권 부여를 조건으로 특정사업자에게 동기식 채택을 강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장관의 언급은 정부가 IMT-2000기술표준과 관련, `복수표준 업계 자율선택''이라는 방침을 공식화 한 것으로 받아들여여져 비동기식 쪽으로 급속히 무게가 쏠리면서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관련업계 = 현재 IMT-2000사업권에 도전하고 있는 업체는 한국통신, SK텔레콤,LG, 한국IMT-2000컨소시엄 등 4곳. 한국통신과 LG, 한국IMT-2000컨소시엄은 복수표준하에 업계 자율선택을 주장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비동기쪽을 선호해왔고 SK텔레콤만이 유일하게 단일표준 입장을 밝혀왔다. SK텔레콤은 단일표준이 확정될 경우 동기식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 장관의 26일 발언이후 SK텔레콤을 포함한 모든 업체들이 비동기방식 쪽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한국통신측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민간업체는 시장상황에 따라 유리한 방식을 선택하면 그만이지만 공기업인 한국통신으로서는 내심 비동기쪽을 원하지만 동기식쪽에 미련을 두고 있는 정통부의 의중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안 장관이 국회에서 특정사업자에게 동기식 채택을 강요하거나 행정지도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점에 주목한다"면서 "그러나 한국통신이 대주주인 정통부의 의중을 무시할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SK텔레콤이 동기식을 채택해주길 바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SK텔레콤은 IMT-2000에 앞서 기술적으로 중간단계에 속하는 IS-95C를 도입, 하반기부터 상용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IS-95C와 호환되는 동기식 IMT-2000을 채택하면 자연스럽게 기술표준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SK텔레콤이 IS-95C에 7천500억원을 투자하고도 IMT-2000에서 비동기식을 채택한다면 과잉투자 시비에 휘말리겠지만 동기식을 채택하면 기존 투자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기술표준 채택에 따라 IMT-2000에서 기존 이동전화 시장판도가 일거에 바뀔수 있다는 점에서 SK텔레콤이 선뜻 이런 주장에 동의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통신은 SK텔레콤이 동기식을 채택하면 부담을 크게 덜수 있기 때문에 SK텔레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통신장비업체인 삼성전자, 현대전자, LG정보통신 등은 내수는 물론 수출시장을 고려해 동기식 및 비동기식 기술표준을 모두 채택, 장비개발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MT-2000의 국내 기술표준은 관련업체로서 워낙 중요한 문제인데다가 이해득실이 간단치 않아 정부가 내달초 사업자 선정기준을 발표하더라도 각 업체별로 9월말사업허가신청서 제출시한까지 비밀에 부쳐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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