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서명법, 사기 행각 부추긴다?

중앙일보

입력

최근 미국에서 통과된 디지털 서명 법안에 대한 문제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기업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소비자들은 오히려 사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권리 보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디지털 서명법이 ID 도용을 증가시킬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대량의 티켓 구매에 대한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밀레니엄 디지털 통상법(Millennium Digital Commerce Act)이라 불리는 이 법안은 전자서류 및 계약서에 실제 서류 및 서명과 동등한 효력을 부여하게 된다. 하지만 의회는 전자 서명의 위조나 사기에 대비한 소비자 보호 조치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았다.

국립 소비자법 센터(National Consumer Law Center)의 마르곳 손더스 책임 변호사는 “전자서명을 도용하는 것은 신용카드 도용 이상으로 쉬운 일”이라며 “신용카드를 도용할 경우 카드 소유자는 50달러만 책임지면 되지만, 이번 전자 서명법의 경우 소비자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신이 전자서명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되는데 무슨 수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손더스는 불안전한 서명 방식의 채택을 우려했다. 사기를 당한 소비자가 디지털 ID 분실뿐 아니라 기술 장애로 인한 손해 비용까지 부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에 유리한 법안

이번 법이 몇 가지 안전장치를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소비자 보호 지지자들은 전자서명법이 신경제의 결정권을 기업에게 이전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자서명법은 상하 양원에서 신속히 처리된 후 클린턴 대통령의 서명만을 남겨둔 상태며 클린턴도 법안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더스에 따르면 이번 법안은 소비자가 디지털 계약서와 종이와 펜으로 실제 작성하는 실물 계약서 중 선택하도록 보장하고 있긴 하지만 기업들이 실물 서류를 고집하는 구매자들에게 부당한 벌금을 물릴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전자계약서 형식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얼마의 금액을 추가로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빈곤층과 컴맹들에게 불리할 수도

전자서명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이런 압력은 컴퓨터를 구입할 형편이 못 되는 빈곤층과 정보통신 분야 문외한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인의 2/3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번 법안에 포함된 다른 소비자 보호 조치로 특정 서류의 경우 완전한 효력을 갖추기 위해종이로 된 서류를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는 진일보

''컨슈머 리포트(Consumer Reports)’를 발간하는 소비자 연맹(Consumers Union)의 데이비드 버틀러 대변인은 통과된 법안에 대해 소비자 보호를 위한 좀더 세심한 조치들이 포함됐으면 하는 아쉬움을 표했지만 당초 예상보다는 나아졌다고 평했다.

소비자 연맹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디지털 서명 문화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며 전자서명 계약을 위한 소비자 지침을 내놓았다. 버틀러는 인터넷 계약에 익숙해지기 위해 소비자나 기업 모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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