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허구의 갈등 = 시청자 바보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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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관련 프로그램 제작진의 최대 고민사항은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갈등이다. 진실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연출은 허용될 수 있지 않느냐란 문제제기는 풀리지 않는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가슴 찡한 무언가를 시청자에게 제시해줘야만 하나 정작 원하는 감동을 끌어내기에 그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결국 TV라는 매체의 특성상 이러한 시간의 제약은 담아내고자 하는 내용물이 얼마나 진실 된가란 문제보다는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시청자를 잡아 둘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만다.

KBS의 〈야! 한밤에〉의 한 코너인 '러브콘티'는 '리얼 드라마'라는 드라마형식을 도입한 다큐 프로그램이다. '리얼'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 다큐라는 형식은 시너지 효과까지 발휘하며 시청자에게 프로그램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한다.

현대 영상에서 장르간의 결합 혹은 해체는 하나의 추세이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서 시도하는 다큐와 드라마의 결합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파격적 형식을 통해 접근하겠다는 진실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다.

철저히 조작된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 진실 혹은 감동을 끌어내겠다는 발상이 너무 노골적이다. 한때 우리는 몰래 카메라의 열풍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순기능보다 부정적인 시각이 더 커 몰래 카메라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가 싶더니 더 철저히 위장한 조작 카메라가 시청자를 다시 현혹시키고 있다.

'러브콘티'는 제작과 관련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시청자로 하여금 이거 진짜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이들이 벌이는 한판 조작극은 3회가 방송된 지금, 너무도 명백하게 밝혀지고 만다.

여자친구에게 장미와 강아지를 선물하려고 몰래 침입한 강의실은 이미 철저히 계산된 연출에 의해 카메라가 배치된 곳이었다.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 모두가 카메라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지나가면서 쓱 한번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인지 두 주인공은 모든 것을 철저히 감추려든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도 곧 허사가 된다. 꽃을 전해주는 남자 주인공에 짐짓 놀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여자 주인공의 어색한 연기. 그리고 이미 모든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주변인들의 장난기 어린 표정들. 짝을 맞춰 MT를 가고 때마침 강아지를 풀어주고 결구 강아지를 찾게 되는 과정을 통해 둘 사이를 맺어주려는 뻔한 연출.

두 주인공의 모습이 영악하지 못했다는 점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고 해도 철저히 계산된 연출임이 뻔하면서 끝까지 진실임을 강조하기 위해 급기야는 여 주인공의 눈물까지 동원하며 시청자를 속이려 드는 모습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영화 〈트루만 쑈〉와 '러브콘티'를 비교하면 그 둘 사이엔 무엇인가 조작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트루먼 쇼〉는 주인공을 속이며 대신 시청자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러브콘티'는 반대로 시청자를 속이고 있다. 그렇다고 〈트루먼 쇼〉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몰래카메라를 옹호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결국 몰래 카메라는 끝나는 순간 무엇인 진실인지 밝혀지는 반면 '러브 콘티'는 진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만다는 것이다.

철저한 위장과 포장으로 모든 것을 덮으려는 연출된 진실에서 과연 어디까지가 진정한 '진실'인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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