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회 난입 시위는 민주주의 부정 폭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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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호 02면

2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국회에 난입했다. 이들은 국회 의원동산에서 구호를 외쳤고, 경찰이 북문을 차단한 뒤에도 일부가 담을 타넘어 국회에 들어갔다고 한다. 경찰은 물대포를 발사했고, 현장에서 67명을 연행했다. 나라가 결딴난 그리스의 시위 장면을 방불케 한다. 혁명상태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에선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결코 간단히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 이들을 해산하려고 국회 안으로 들어간 경찰의 물대포차가 바로 우리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싫든 좋든 유권자들이 뽑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여 서로 다른 의견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법과 정책을 만드는 장소가 국회다. 그곳에 시위대가 난입한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통째로 부정하는 행위다. 대한민국의 의회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도발이고 모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에 난입한 이유는 정당성이 없다. 한·미 FTA는 반대하는 쪽도 있지만 찬성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단지 찬성하는 목소리는 조용하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클 뿐이다. 게다가 수출이 아니면 먹고살 길이 없는 대한민국이 자유무역을 반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서민을 대변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반대를 뿌리치고 한·미 FTA를 추진한 것도 그런 이유다. 마찬가지로 유럽이나 다른 나라와의 FTA는 괜찮고 미국과는 안 된다는 논리도 궤변이다. 한·미 FTA를 빌미로 반미 정서를 확산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우리는 본다.

민주사회에선 누구나 자기 주장을 표시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내에서다. 소수가 떼로 몰려다니며 불법시위를 하는 게 소득 수준 2만 달러에 이른 국민으로서 적절한 행동인가. 이는 물론 국회 내에서 의사당 폭력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며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추락시킨 국회의원들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맘에 안 든다고 국회까지 난입한다면 이 같은 폭력이 요즘 말썽 많은 조폭의 폭력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쪽은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할 정치적 통로도 갖고 있다. 시위대와 뜻을 같이하는 대표자들이 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해 있다. 10·26 재·보선에선 노선이 비슷한 서울시장도 나왔다. 제도권 정치에 어엿한 대표를 배출한 집단이라면 정치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더욱 우려되는 건 이런 행태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를 흉내 낸 ‘점령 시리즈’라도 생겨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럼에도 경찰은 29일 연행자 전원을 석방했다. 정부는 다수의 국민에게 피해를 주거나 국가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는 공공기관 점거 시위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목소리만 크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국가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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