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빌 게이츠등 세계 IT 3인 서울서 '대결'

중앙일보

입력

'컴퓨터 황제' 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수석개발자와 '미스터 인터넷' 인 시스코의 존 챔버스 회장, 그리고 인터넷 탈(脫)상업화를 외치는 리처드 스톨먼 MIT 교수. 세계 인터넷의 3거두가 14일 오후 서울에 모였다.

이들이 미국 외의 나라에서 동시에 모여 기(氣)싸움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대조적이었다.

게이츠와 챔버스는 1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바쁘게 움직였고, 스톨먼은 은둔의 성자답게 일정을 느긋하게 잡아놓았다.

세계 인터넷업계의 향후 판도를 갈라놓을 윈도와 리눅스의 대결, 그리고 소프트웨어 업체와 인프라 기업의 인터넷 주도권 다툼이 이날 서울에서 압축적으로 펼쳐졌다. 세계 인터넷시장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국내 인터넷 전문가들도 덩달아 바쁜 하루를 보냈다. 시차를 두고 숨가쁘게 진행된 이들의 강연를 듣기 위해 호텔로, 장충체육관으로 쫓아다녔다.

게이츠는 황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예전에는 비즈니스 클래스를 애용했지만 이번에는 대만에서 전세기를 타고 왔다. 호텔도 최고급 객실을 잡았고, 조찬은 안병엽 정통부장관과 남궁석.곽치영.김영환.원희룡 의원 등 정보통신 핵심인물들과 함께 했다.

그는 '아시아 기업 정상회의' 에 모인 경제지도자들에게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지역" 이라며 "한국의 정보통신 지원정책을 높이 평가한다" 고 밝혔다. 게이츠는 이날 삼성전자와 차세대 휴대폰의 단말기를 공동개발한다는 굵직한 선물도 내놓았다.

게이츠보다 한층 돋보인 인물은 챔버스 회장. 그는 오전.오후 두차례의 강연에 청중들을 몰고 다녀 인터넷 시대의 최고 강자라는 평가를 받기에 손색이 없었다. 챔버스는 강연에서 "한국은 인터넷 경제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며 "시스코는 인터넷 인프라를 최대한 지원하겠다" 고 밝혔다.

그는 세일즈맨 출신답게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도 발휘했다. 하나로통신 신윤식 대표가 챔버스에게 "인기가 대단한데 비결이 무엇이냐" 고 물었다. 그는 이에 대해 "나는 누구와도 편하게 만난다.

나에게는 비밀이 없다. 고객이 원한다면 나는 이런 것도 가르쳐준다" 며 신대표에게 아내의 휴대폰 번호까지 적어주었다. 한바탕 크게 웃고난 챔버스와 신대표는 현장에서 곧바로 2억달러짜리 투자의향서에 서명했다.

게이츠와 챔버스는 철저한 비즈니스맨이었다. 강연회 틈틈이 두 사람은 국내 기업가들과 면담을 가졌으나 누구와 어디에서 만났는지 모두 비밀에 부쳤다.

이날 오후 2시 신라호텔 2층 오크룸. 게이츠와 챔버스는 자신들의 공식 스케줄을 30분 가량 미룬 뒤 은밀히 만났다. 두 사람의 전격적인 회동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뒤늦게 취재진이 달려가자 건장한 경호원들이 막아섰다.

정보통신업계 소식통은 "노출을 꺼리는 두 사람이 서울에서 비밀회동해 중대한 사안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 관측했다.

반면 스톨먼 교수는 이날 오후 4시40분 타이항공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왔다. 그가 들고온 짐이라곤 침낭과 노트북 컴퓨터뿐. '덥수룩한 수염과 투명한 눈빛이 수도승을 연상시켰다.

공항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사용하자는 그의 카피레프트(저작권을 의미하는 카피라이트의 반대말)운동 지지자들이 몰려나와 스톨먼을 환영했다.

리누스 토발즈가 리눅스의 기술적 창시자라면, 스톨먼은 리눅스를 윈도와 버금가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정신적인 지주. 빌 게이츠조차 "스톨먼이 우리 앞날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 고 경계한 인물이다.

그는 리눅스 코리아 이만용 이사의 8평짜리 원룸에 짐을 풀었다. 신혼부부의 방인 데도 개의치 않았다. "특정인이 정보를 독점해서는 안된다" 는 지론대로 무(無)소유 원칙에 철저했다. 스톨먼의 일정은 대부분 비어 있다.

공식 스케줄은 14일 저녁 리눅스 공로자 시상식 참석, 코엑스(15일)와 연세대(18일)의 강연뿐. 나머지 시간에는 리눅스 지지자들과 자유토론을 하거나 깊은 명상에 잠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철호.이승녕.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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