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민의 부자 탐구 ⑥ 부자의 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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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

부자 하면 모두들 부러워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반(反)부자 정서도 강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같은 곳에서는 사회공헌 활동 등을 통해 ‘반부자’ ‘반기업’ 정서를 바꿔 보려고도 한다. 부자가 기부를 잘하면 반부자 정서가 바뀌게 될까? 가진 사람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언급한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 누가 부자를 노블(귀족층)이라 했나?

 대학 입학 면접시험 중에 경험한 일이다. 면접은 예비 대학생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학생들의 상투적인 답변을 계속 듣기에 정말 고역이다. 이 와중에 면접 예시문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마더 테레사 성녀의 자선 활동에 관한 얘기였다.

 “이 세상에 불쌍하고 굶주린 인간들이 많은 것은 하나님이 이들을 돌보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불쌍한 사람들에게 한 조각의 빵을 나누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접은 학생들이 가진 ‘자선·기부’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런 조건 없이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아니면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 테레사 수녀의 얘기와 일치하는 주장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면 자선행위가 더욱 활발해질까?“

 

자선과 기부의 심리는 두 갈래로 표출됐다. 하나는 “자선을 베풀면 자비심을 체험하고 또 심리적 만족을 얻는다. 그래서 자선은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든다. 자신의 허영과 자비심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호 이익이다”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자선은 적어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즉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쌍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또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구걸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부 대상자의 특성이나 형편을 고려해 자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답답한 면접시간이 심리 연구 시간이 됐다. 대부분 학생은 우리가 기부를 더 많이 해야 하지만 ‘받는 사람들의 조건’을 고려해 자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남을 도와야 한다는 테레사 성녀의 말씀은 비현실적이라고까지 평가했다. 학생들의 이런 주장은 놀랍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부자들이 하는 “기부하기도 참 힘들다”는 소리와 일맥상통한 말이기도 했다.

 더 많은 돈을 벌길 원하는 ‘배고픈 부자’나 삶의 품격을 유지하려는 ‘품격 부자’ 모두 기부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무데나 할 것이 아니라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진 사람이나 단체에 해야 하는데, 그런 마땅한 곳이 없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기부를 할 것이다”고 한다. 바로 이게 대중이 부자를 미워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부자가 조건이 되는 사람에게 기부를 하고 기회가 되면 자선을 하겠다고 할 때, 부자는 ‘존경’받기 힘들다. 왜냐하면 대중이 부자를 존경하는 마음은 그의 돈을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할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돈이 많다는 이유로 존경받을 것이라 믿으면 착각이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다.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는 ‘배고픈 부자’의 모습과 대중이 원하는 부자의 모습이 동시에 담겨 있다. 부자에 대한 정체성을 알려준다. 부자는 단지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돈을 잘 쓰는 사람이다. ‘기회가 되면, 받을 자격이 있는 대상에게 기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런 기회는 영영 오지 않는다. 이 말은 단지 ‘나는 기부하고 싶지 않아요’와 같은 뜻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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