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차베스·살레 … 등골 서늘한 ‘카다피 친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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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

무아마르 카다피(69)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리비아 국민만큼이나 기뻐했던 이들이 있다. 카다피처럼 자국민 살상을 서슴지 않는 독재자와 맞서고 있는 예멘과 시리아의 국민이다. 이들은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가 자국의 독재자를 축출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시리아 중부 홈스에 기반을 둔 반정부 세력의 웹사이트에는 21일(현지시간) “알아사드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는 배너가 걸렸다고 dpa통신이 전했다. 탱크와 군함까지 동원해 무차별 학살을 해온 바샤르 알아사드(46)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시리아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한 지난 3월 이후 지금까지 어린이 187명을 포함한 3000명이 희생됐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터키로 피해 있는 시리아 반정부 인사 오마르 알머크다드는 “카다피의 죽음으로 전 세계의 독재자들은 교훈을 얻을 것”이라며 “자국민을 학살하는 이들은 결국 국민의 발에 짓밟혀 최후를 맞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머크다드는 또 “이는 독재자를 몰아내려는 시리아 국민의 노력에 한층 가속도를 붙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리아 반정부 시위의 거점인 홈스 등에서는 카다피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군중이 모여들어 “바샤르, 다음은 네 차례야”라는 구호를 외쳤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부자 세습을 통해 11년째 시리아를 철권통치하고 있다. 그는 29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했던 아버지 하페즈가 2000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뒤이어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살레 예멘 대통령

 예멘의 상황 역시 비슷하다. 지난 2월부터 예멘에서는 33년 동안 장기집권 중인 알리 압둘라 살레(69)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살레 대통령은 폭탄테러로 중상을 입은 뒤 사우디아라비아에 피해 있다 최근 귀국해 평화적 정권 교체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정부군을 동원해 비무장 시위대를 무참하게 짓밟고 있다.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인 데이비드 하트웰 역시 “카다피의 죽음은 ‘아랍의 봄’이 그랬던 것처럼 이 지역에 큰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라며 “튀니지 재스민 혁명이 이집트로 이어졌던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비아계 미국인 여성들이 20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 브리지뷰에서 열린 무아마르 카다피 사망 환영집회에서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 깃발을 두른 채 포옹을 하고 있다. NTC는 22일 ‘리비아 해방’을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브리지뷰 AP=연합뉴스]

 다른 지역 독재자들이 카다피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역시 관심사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경우 핵무기에 더욱 집착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 위원장은 카다피 정권의 패망이 대량살상무기(WMD) 포기에서 비롯됐다고 믿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몇 안 되는 카다피의 친구였던 우고 차베스(57)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카다피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를 ‘훌륭한 전사이자 순교자’로서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카다피는 살해당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아무리 그래도 양키들이 전 세계를 점령할 순 없다”고 말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암 치료를 위해 쿠바에 머물다 카다피가 숨진 20일(현지시간) 귀국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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