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 닷컴을 위한 신병훈련소

중앙일보

입력

주식공모 ‘신병훈련소’(집중 세미나)가 1년 전 처음 열렸을 때는 PT(체력강화) 체조나 고된 훈련 같은 것은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요동치는 나스닥에서 파도타기 요령을 배워 백만장자를 양산하는 주식공모에 성공하기 위해 지역 인터넷 신생업체의 최고경영자와 최고재무책임자들이 캘리포니아州 멘로 파크의 샌드힐 로드에 자리잡은 고급 회의장으로 몰려들었다.

그 하루 코스 세미나를 준비했던 도이체 방크 알렉스 브라운의 투자은행가들은 그때가 그리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중 한 명인 피터 브렉은 “신병훈련이라기보다 안식휴가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중순 같은 행사가 열렸지만 이번에는 여건이 훨씬 좋지 않았다. 나스닥 지수는 연초 대비 17% 하락했고 4월 초 이후 무려 42건의 주식공모가 취소 또는 연기됐다. 1백40명의 신생업체 중역들이 참가한 세미나에서 먼저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바이어스의 벤처 자본가 조 레이컵이 연단에 올라 대다수 소비자 대상 인터넷 기업의 주식공모 붐은 향후 2년간 되살아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 다음 창업투자사 오거스트 캐피털의 앤디 래퍼포트가 나서 ‘다운 라운드’(새 투자 유치를 위해 회사의 평가액을 낮추는 극약 처방)의 필요성이 새로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레이컵과 래퍼포트는 무능한 최고경영자를 해고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소음보다 신음과 불안한 웃음소리가 더 컸다.

마지막으로 알렉스 브라운의 주식분석가 짐 무어가 그날의 명언을 내놓았다. “우린 지난 2년 동안 ‘흑자를 내려고 안달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지금은 ‘그건 농담이었다’고 말한다.”

시장 여건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미심쩍게 생각하던 창업자들은 그 세미나에서 확증을 얻었다. 앞으로 20대 경영자들이 금융업계의 충동질로 설익은 회사들을 모양만 그럴싸 하게 꾸며 시장에 내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서니베일 소재 이카리안의 로버트 브라운 재무국장은 “좀 허탈하다”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최근 5천5백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지만 주식공모를 고려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앞으로 2∼3년은 더 개인 자본을 짜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개인적으로 그는 만족스럽다면서도 벼락부자가 되는 길이 “완전히 막혔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실리콘 밸리의 황당한 풍토병인 ‘난 아니야’症(not-me-itis)을 보이는 참석자들도 있었다. 그 병에 걸리면 검증받지 않은 신생업체의 경영자가 정색을 하고 “부실한 회사들이 모두 도산하면 우리 앞길이 훤히 뚫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경영자는 그런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다고 주장했다. 레드우드 시티에 있는 뉴채널의 최고경영자 크리스 리슬리는 “이제 얼토당토 않은 사업구상을 가진 신생업체들이 우리 직원을 빼내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도 끝내 “주가가 크게 과대평가됐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날이 저물면서 연사들은 비관론을 접고 주식공모 과정을 헤쳐나가는 법에 관한 조언을 제시했다. 로드쇼(투자설명회)에서 살아남는 법(“은행이 전용 제트기 운영비를 부담하게 하라”), 증권감독위원회(SEC)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는 법(“그들을 시험하지 말라, 그들은 반드시 복수한다”) 등등. 그러나 연사들 모두 참가자들이 언젠가 기업을 공개할 것으로 가정했다. 평균치가 들어맞는다면 세미나 참가자 중 샴페인을 터뜨리는 사람은 다섯에 하나 꼴도 안 될 것이다. 인터넷 기업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들 신병훈련소가 필요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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