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기업들 "파견 근로자 어찌 하오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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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로 파견 계약기간 2년이 끝나는 근로자들이 속출하면서 기업들이 고심하고 있다.

내보내자니 숙련된 인력을 당장 대체 고용하기가 어렵고, 정식 직원으로 돌리자니 인건비와 노사관리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고할 경우 해당 근로자나 노동단체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같은 고민은 노사정(勞使政)합의에 따라 1998년 7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 시행될 때 이미 예고됐다. 파견근로자는 1년 근무 후 1년까지만 파견신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따라 계약기간 2년이 임박한 근로자들이 나오면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노동부는 전체 파견근로자 5만여명 가운데 이달 말로 2년 계약기간이 끝나는 근로자가 5천8백49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일부 업체는 이미 당사자에게 해고통보를 시작했다.

이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 등 사용자 단체들은 파견근로 기간을 한시적으로 1년이라도 더 연장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들은 고용불안과 노조의 입지약화 등을 이유로 파견 근로기간 연장불가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동부도 "법을 고치더라도 좀 더 시행한 뒤 고치겠다" 는 입장이어서 파견근로자 문제는 여름철 노사간 쟁점이 될 전망이다.

◇ 예고된 해고〓A종합병원은 인력 파견업체에서 공급받은 파견근로자가 4백여명인데 이달 말로 2년 계약기간이 끝나는 인원이 3백여명이다.

병원측은 "대부분 간호.병동 보조원으로 일하는 20대 단순직 여성 근로자라서 정식 직원으로 바꾸기 어렵다" 고 말해 상당수를 해고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통신업체인 B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2백70명의 파견인력을 쓰고 있지만 정보통신 인력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해고하면 대체인력을 충원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정식 직원으로 전환하면 인건비 부담 등으로 경영이 어려워질 것" 이라고 말했다.

텔레마케터 등 1천4백여명의 파견인력을 쓰는 이동통신업체 C사는 "2년 파견 계약기간이 끝나는 인원 중 90% 이상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 고 털어놓았다.

◇ 노동계 반발〓한국노총 유정엽 연구원은 "2년 이상 파견근로자가 필요한 직종이라면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정식 직원으로 전환하는 게 옳다" 고 말했다.

민주노총 주진우 국장은 "일부 업체들이 파견근로자를 월 단위의 단기 임시직으로 전환하는 등 편법을 쓰는 데다 파견업체의 중간마진도 너무 커 파견근로자 보호법이 악용되고 있다" 고 주장했다.

노동부 고용관리과 서호원 사무관은 "2년밖에 안된 법을 바꾸거나 폐지할 수 없다" 면서 "6월을 중점 지도기간으로 정해 사용자에게 파견근로자를 정식 직원으로 전환할 것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고 말했다.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노동단체나 사회여론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업체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 이라고 털어놓았다.

◇ 해법은 없나〓한국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근로자 파견기간을 2년 이상으로 늘리고 현재 26개 단순직종 위주로 제한돼 있는 파견직종을 더욱 늘리는 쪽으로 법을 고치는 대신 파견근로자에게도 고용보험 등 정식 직원과 같은 복지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인력파견 업체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일본.미국처럼 파견기간.직종에 제한을 두지 않거나 파견기간을 신축적으로 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대한상의 엄기웅 조사본부장은 "일본도 80년대에 비슷한 문제가 생겼지만 정부가 파견근로자 계약기간을 어기는 업체에 대한 제재를 유보한 적이 있다" 면서 "법을 당장 고치기 어렵다면 법 적용에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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