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마라톤 코스 이탈, 도핑 파문 … 코스 벗어난 육상연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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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철
스포츠부문 기자

경주 국제마라톤대회 코스 이탈사고는 인재(人災)다. 연맹이 주최하고 경상북도 육상경기연맹이 주관해 16일 경북 경주시 일원에서 열린 2011 경주 국제마라톤대회에서 벌어진 사건은 연맹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결승선을 불과 2㎞ 남짓 남기고 오서진(23·국민체육진흥공단) 등 국내 선수들이 코스를 안내해야 할 경기 심판이 제자리를 벗어나는 바람에 엉뚱한 길을 달려 레이스를 망쳤다. 국내 1위를 향해 스퍼트하던 오서진은 성적은 물론 대회 상금 1000만원과 팀에서 주는 격려금 1000만원 등 2000만원을 순식간에 날렸다.

  심판은 불과 10여 분 전 아프리카 선수들이 주를 이룬 선두그룹이 지나가자 국내 선수들이 뛰는 후발 그룹은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제 위치를 벗어났다. “외국 선수들은 코스가 낯설지만 국내 선수들은 아마 잘 알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수들은 코스를 안내하는 표지판마저 바람에 쓰러져 혼란을 겪었다.

 연맹은 사과 대신 책임 전가에 급급했다. 김동주 연맹 운영위원장은 “선수들이 못 뛰어가게 다 막아 놨다. 코스를 알면서 그쪽으로 뛰어간 선수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황영조 감독은 “경주 사는 사람도 아니고 42㎞ 넘는 거리를 외우긴 어렵다. 더구나 올해는 코스가 바뀌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연맹과 주최 측이 코스를 새로 짜놓고 심판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대한육상경기연맹은 18일 긴급 임원회의를 열고 코스 이탈 사건을 정밀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서상택 연맹 홍보이사는 “오동진 회장이 ‘누가 잘못했는지, 뭐가 잘못됐는지 철저하게 가려 일벌백계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상급 단체인 대한체육회는 육상연맹에 ‘책임감을 갖고 잘 해결하라’고 전달했다고 한다.

 연맹의 미숙한 행정은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주엔 남자 단거리 간판 임희남(27·광주광역시청)의 도핑 적발 사실을 알고도 그냥 넘어가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연맹은 임희남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으로부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기간 약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고도 전국체전 출전을 허용했다. 도핑 사실이 적발된 선수는 즉시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게 상식이다. 서상택 연맹 홍보이사는 “연맹은 도핑 적발과 코스 이탈사건을 큰 문제로 여기고 있다. 인적 쇄신을 위해 다음 주께 조직을 개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우철 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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