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칼라콘 한국지사장 “한국은 원형·주황색 알약 좋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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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칼라콘 한국지사장이 알약 샘플과 옷(필름) 파우더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칼라콘은 글로벌제약회사들이 출시하는 2만여 종의 알약 옷을 제작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방수 기능이 좋은 고어텍스, 햇빛을 차단하는 필름…’.

  기능성 옷 이야기가 아니다. 흔히 먹는 알약도 이런 ‘옷(필름)’을 입고 있다. 약들이 햇빛·수분에 노출돼 변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색깔·성분에 따라 약의 옷 종류가 수만 가지나 된다. 이 옷을 만드는 세계 대표급 회사로 ‘칼라콘’이 있다. 칼라콘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본사를 둔 다국적 알약 디자인·컨설팅 회사다. 국내에도 연구소 형태의 한국지사를 두고 국내 제약사들이 만들고 있는 약의 옷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파는 건 일종의 커피믹스입니다. 분말 형태로 약의 옷을 만들면 제약사들이 공장에서 물만 부어 약에 뿌리는 거죠.”

  김진희(50) 칼라콘 한국지사장의 말이다. 11일 수원 성균관대 제약기술관의 칼라콘 한국지사에서 만난 김 지사장 앞에는 드럼 세탁기를 닮은 기계가 놓여 있었다. 하얀 알약 50여 개를 그 속에 넣고 버튼을 누르자 통이 좌우로 돌고 약도 덩달아 구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노즐에서 분홍색 물이 분사돼 약 표면이 곱게 물들었다. 제약사 공장에 있는 옷 입히는 기계를 실험용으로 작게 만든 것이다.

보령제약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 SK케미칼의 발기부전치료제 ‘엠빅스’, 중국 제약사가 출시한 어린이 비타민제와 위장약(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 지사장은 “소비자는 약 색깔이 일정하지 않을 경우 변질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같은 색을 내는 옷을 입히는 게 우리 임무”라고 했다. 약의 성질에 따라 ‘맞춤형 옷’을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약이 물을 흡수해 까맣게 변하거나 햇빛에 노출돼 바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지사장은 “색과 기능을 조합해 전 세계 제약사에 2만여 개의 알약 옷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제약사의 옷을 만들고 있지만 칼라콘의 매출은 8000억~9000억원 수준이다. 약 무게 중 옷이 차지하는 비율이 3%도 안 되는 탓이다. 대신 칼라콘 공장은 대륙별로 하나씩 분산해 짓는 등 국가기밀 시설 수준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김 지사장은 “칼라콘 공장이 멈출 경우 전 세계 제약사들이 시장에 약을 원활히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칼라콘이 최근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알약 디자인 컨설팅’이다. SK케미칼이 출시한 발기부전 치료제 ‘엠빅스’와 보령제약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를 이곳에서 디자인했다. 특히 엠빅스의 탄알처럼 생긴 약 모양은 출시될 때부터 화제가 됐다. 김 지사장은 “SK케미칼이 발기부전 치료 시장의 후발주자로 뛰어든 만큼 빠르고 강한 약효를 디자인에서도 보여주길 원했다”며 “이를 강조하기 위해 약을 탄알 모양으로 만들고, 한국 사람들이 강하고 안전한 색으로 인식하는 주황색 옷을 입혔다”고 말했다.

 알약 디자인 측면에서 외국과 달리 국내 제약업계는 보수적인 편이다. 원형 또는 타원형의 전통적 약 모양을 선호한다. 입힐 수 있는 옷의 색깔도 미국·유럽보다 적다. 쓸 수 있는 색소 가짓수가 7~8개로, 이를 섞어 쓴다. 미국·유럽은 쓸 수 있는 색소 수가 우리보다 2~3배 많다. 알약 디자인이 가장 다양한 곳은 중국이다. 그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특성상 알약에 각종 무늬를 프린팅하거나 동물 모양 등 각종 모양으로 약을 만드는 게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제약 업계에서는 국내 시장에도 알약 디자인 경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들이 제네릭(복제약) 시장에 대비해 신약에 고유의 디자인을 입히고, 의장등록까지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의장등록된 신약의 경우 특허가 끝나도 일정 기간 그 디자인을 따라 할 수 없다. 대표적 예가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다. 비아그라의 특허는 내년 5월 만료되지만 의장등록 유효기간이 남아 국내 업체들이 비아그라의 푸른색 다이아몬드 모양을 따라 약을 만들 수는 없다.

김 지사장은 “일본에서 개발 중인 신약 중에는 가짜 약을 가려내기 위해 필름에 칩을 넣는 작업까지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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