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sless 애플’ … 삼성과 죽기살기식 ‘치킨게임’ 끝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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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서 만든 스티브 잡스 창업자의 추모 사이트를 아이폰 화면에 띄웠다. 아이폰의 검은 테두리가 마치 영정을 둘러 친 검은색 리본처럼 느껴진다. 아이폰의 단순함은 잡스 디자인 철학의 결정체다. [시드니(호주) 로이터=연합뉴스]

황제가 떠났다. 정보기술(IT)업계를 이끌어온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56)가 6일(한국시간) 타계했다는 소식에 전 세계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애플과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으로선 만감이 교차한다. 한때 잡스는 조언을 주고받는 삼성의 동지였고, 이후 최대 고객사의 수장이었지만 죽음 직전에는 특허전쟁터에서 칼을 맞댄 적장으로 돌변했다. 삼성은 잡스의 타계와 상관없이 애플 ‘강경대응’ 방침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두 회사가 타협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란 소문도 솔솔 나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같은 글로벌 IT기업들 역시 ‘포스트 잡스(Post Jobs)’ 시대를 맞아 기선을 뺏기지 않기 위한 발걸음이 한층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두 맞수 다시 악수할까=올 초까지만 해도 삼성에 대한 잡스의 태도는 우호적이었다. 애플은 삼성전자로부터 지난해엔 6조1852억원, 올해는 8조5000억원 상당의 부품을 구매하는 최대 고객이기도 해 삼성으로선 깍듯할 수밖에 없었다.

 

1983년 11월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당시 28세의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 [삼성 제공]

잡스와 삼성가(家)의 인연은 3대(代)로 이어졌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1983년 11월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잡스를 만났다. 당시 73세의 이 회장은 28세의 젊은 사업가를 만난 뒤 “굉장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젊은이”라며 “앞으로 IBM과 대적할 만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애플이 삼성의 최대고객으로 떠오르면서 이건희(69) 회장도 잡스를 종종 만났고, 이재용 사장(43)도 잡스를 직접 만나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친선관계는 올 4월 이후 극적으로 틀어졌다. 애플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지방법원에 삼성전자의 갤럭시폰과 갤럭시탭이 아이폰의 디자인을 베꼈다며 특허소송을 내면서다. 이후 삼성과 애플은 IT업계에서 가장 첨예한 ‘적대 관계’로 돌아섰다.

 최지성 부회장은 이날 “고인의 창조적 정신과 뛰어난 업적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애도와 법정 공방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럼에도 두 회사가 일정시점에 결국 화해의 손을 내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양사의 소송전이 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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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아이콘 계승자는=잡스가 경영권을 빼앗기고 물러났던 1985년 이후 애플은 파산위기에 직면하는 등 심각한 상황을 맞았다. 그만큼 잡스가 애플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고 그 빈자리는 예측이 어렵다. 삼성경제연구소 임태윤 수석연구원은 “단기적으로 향후 5∼6년은 시스템이 움직이기 때문에 애플 입지에 큰 변화가 없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 수석은 또 “애플 내부에서 스타CEO가 나올 가능성보다는 구글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이 잡스의 ‘혁신 아이콘’ 이미지를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애플 아이폰과 구글·삼성이 주도하는 안드로이드 진영,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 진영이 이루고 있는 3각 판도도 변화가 점쳐진다. 단기적으로는 안드로이드 진영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잡스가 타계한 데다 당초 예상한 아이폰5 출시도 미뤄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삼성과 MS가 광범위한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폐쇄적인 시장 전략을 써온 애플의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심재우·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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