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래, 나의 별 ⑭ 세계우표디자인공모대회 최우수상 신지은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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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우정사업본부는 세계우표디자인공모대회 수상작 두 편을 가족을 주제로 한 특별우표로 발행했다. 그 중 하나는 대가족의 얼굴을 포도알로 묘사해 가족의 소중함을 표현한 신지은(성남정보산업고3)양의 작품이다. 신양은 이 작품으로 지난해 열린 제16회 세계우표디자인공모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생전 처음으로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했기에 수상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 신양이기에 자신의 작품이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았다.

 신양은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전혀 받은 적이 없다. 웹디자인을 전공해 포토샵과 일러스트 같은 프로그램은 익숙했지만 순수미술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런 신양에게 우표디자인대회 수상은 꿈이 없던 그에게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 준 계기가 됐다. 신양은 “스케치를 하고 여러 가지 색상을 배합하면서 디자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대회 준비를 하는 2주 동안 스케치를 손보고 색상을 입히는 작업이 너무나 재밌었기 때문이다.

 공모전 준비가 디자이너의 꿈을 깨우게 했다면 꿈을 구체화 시킨 결정적 계기는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이라는 디자이너를 알게 되면서 부터다. 1960년대 화산폭발이 빈번했던 인도네시아 발리섬은 라디오가 없어 재난소식을 듣지 못한 원주민들이 희생당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파파넥은 이들을 위해 관광객들이 버린 음료수 캔과 동물의 배설물로 깡통 라디오를 디자인해 9센트라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도록 했다. 이후 그는 공익을 위한 디자인 운동가로 평생을 바쳤다. 신양 자신도 가정형편이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던 탓에 자연스레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디자인을 통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는 신양은 공익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마음을 빼앗겼다.

 신양은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대학진학을 결심하고 실기준비를 위해 입시미술학원에 등록도 했다. 늦어도 고1 때부터 실기를 준비해 온 경쟁자들과 달리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뒤늦게 시작한 것이다. 명암법과 투시법 같은 기초적인 이해조차 없어 경쟁자들의 실력과 비교해 포기할 생각도 했었다. 그 때마다 간절히 이루고 싶은 소망을 생각했다. 자신이 동경하는 빅터 파파넥의 작품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이를 악물었다.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하자”는 각오로 주말도 없이 미술공부에 매진했다.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 틈틈이 도화지를 들었다. 그 결과 지금은 경쟁자들과 비교해 완성도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자이너로 진로를 정하고 나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디자인 영감을 주는 훌륭한 소재로 다가왔다. 음악 가사도 디자인 소재로 활용했다. 음악을 듣다가도 마음에 드는 가사가 있으면 디자인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디지털 카메라도 늘 가지고 다녔다.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구름이나 예쁜 물건, 특색있는 벤치까지 사진으로 남겼다. 잠들기 전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전화로 하루 동안 찍은 사진들을 정리해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한다. 그 고민을 바탕으로 작품의 동기를 찾고 그림의 배경으로 삼았다.

 신양은 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할 계획이다. 그녀의 포트폴리오 역시 광고작품이 많다. 흡연의 해악을 강조하는 공익광고도 만들었다. 신양은 “빅터 파파넥처럼 자신도 디자인으로 소외된 이웃을 챙기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사진설명] 세계우표디자인공모대회 출품을 계기로 디자이너의 꿈을 갖게 된 신지은양은 공익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다.

<김만식 기자 nom77@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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