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 독재자의 지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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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 ROBERTS

이디 아민, 김정일 등 황당무계한 통치자들 중에서도 카다피가 최고다

뉴스위크
리비아의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의 몰락은 ‘광인 독재자’들의 황당한 기행을 재미있어 하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큰 타격이다. 카다피는 1978년 이디 아민의 축출 이래 줄곧 모두가 인정한 광인 독재자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아민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생전에 자신의 공식 직함을 이렇게 고집했다. “땅 짐승과 바다 물고기의 주인, 아프리카 전체와 특히 우간다의 대영제국 정복자, 빅토리아 십자훈장과 공로 훈장, 전공 십자훈장에 빛나는 생명장의 최고사령관, 닥터 알하지 이디 아민 대통령 각하.”

[Dictators] Raving Mad Monster

아민처럼 카다피도 훈장을 좋아했다. 그중 다수는 순전히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 훈장 집착은 자긍심 강한 광인 독재자라면 거의 필수 요건이다. 카다피는 군에 있으면서 단 한 차례의 전투도 치르지 않았지만 훈장이 여덟 줄이나 된다. 리비아 최고 영예인 위대한 엘 파타 일등 훈장부터 시작한다. 미얀마의 장군들도 훈장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독재자들이지만 카다피에 이어 광인 독재자 1위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개성이나 카리스마가 강한 인물은 없다.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다섯 시간에 걸친 장황한 연설로 유명했지만 이젠 과거지사라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의 동생 라울은 완전히 내성적이다. 짐바브웨의 무가베가 늘 유력한 경쟁자다. 2003년 3월 그는 잊지 못할 연설을 했다. “난 여전히 현 시대의 히틀러다. 히틀러의 목표는 오직 한가지. 국민의 정의와 주권을 보호하고 국민의 독립과 자원 사용권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게 히틀러라면 나는 그 열 배에 해당하는 히틀러다.” 하지만 이디 아민이 자신을 ‘스코틀랜드의 합법적인 국왕’이라고 선언한 데 비하면 점잖은 편이다. 광기가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카다피의 뒤를 이을 만하다.

옛 소련 공화국들도 상당히 유력한 도전자를 여럿 배출했다. 그중에서 소련이 붕괴한 1990년부터 자신의 임종까지 트루크메니스탄을 통치한 종신 대통령 사파무라트 니야조프가 압권이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한 책과 시인들의 이름으로 달력의 달 이름을 바꿨고, 어머니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했으며, 대부분 사막인 나라의 수도 부근에 얼음 궁전을 지었고, 수염과 금니를 불법화했으며, 여기자의 화장을 금했다(“화장하지 않아도 예쁜데…”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카다피의 광기는 수년 동안 서서히 숙성됐다. 단 한 차례의 미친 짓으론 그 경지에 이르기가 불가능하다. 단발성 기행은 사례가 많다. 1962년부터 81년까지 미얀마를 철권통치한 네윈은 지폐의 액면 단위를 15, 35, 45, 75, 90으로 바꿨다. 점술가가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는 숫자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중앙아프리카의 보카사 1세는 어떤가? 그는 “검은 아프리카의 사회 진화 운동이라는 국가 정당 안에 뭉친 중앙아프리카 국민의 의지에 의해 중앙아프리카 제국의 황제에 등극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의 1년 예산 중 3분의 1을 나폴레옹을 본뜬 대관식에 지출했다. 아이티의 파파 독 뒤발리에는 검은 개를 전부 도살하라고 명령했다. 야당 지도자가 검은 개가 됐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옛 자이르의 모부투 세세 세코는 TV에서 자신 외에는 누구의 이름도 거론하지 못하게 했다.

김정일 북한 지도자가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날씨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사실이라면 포스트-카다피 대상을 거머쥘 유력한 후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선 선두주자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다. 2006년 그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사탄’이라 부르며 “지금도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고 말했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도 강력한 도전자다. 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고집하는 행동은 진정한 ‘광인 독재자’의 확실한 표시다. 하지만 카다피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필자는 ‘전운: 새로 쓰는 제2차 세계대전 역사 (The Storm of War: A New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의 저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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